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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이웃종교를 위해 기도하자"는 청년불자 정우식 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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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한불교청년회 작성일11-02-21 17:38 조회4,4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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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종교와 이웃 종교인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지난달 23일 대한불교청년회(대불청) 중앙회장 이.취임 법회에서 제26대 신임 회장을 맡게 된 정우식(42) 씨는 청년불자들의 33가지 다짐 중 하나를 이렇게 밝혔다.

얼핏 들으면 ‘좋은 게 좋은 것’ 같은 말이지만, 사실 고심 끝에 나온 다짐이다.

“사실 일부 개신교인들이 불교를 사탄이니 하면서 신성한 사찰에 들어가서 ‘사탄의 소굴은 파괴돼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했던 사건이 있었잖아요? 이는 불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정말 비종교적인, 시대착오적인 행동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불자들도 마음을 잘 못 내고 ‘개신교 목사님 위해 기도합시다’ 라고 잘 못하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부터 이웃 종교와 종교인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진하면 사회가 보다 더 상생하고 갈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정우식 회장은 동국대 철학과 88학번, 1991년 동국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이른바 ‘386세대’로 한창 때 ‘386 최고의 명연설가’라 불렸던 인물이다. 학생운동 시절 수배를 당해 쫓겨다녀도 봤고, 큰 병을 얻었다가 주변의 도움으로 새 삶을 얻기도 했다.

그렇게 인연과 인연이 닿아 그는 지금 청년불자들과 함께 ‘만해정신’을 오늘에 되살리자고 나서고 있다.

‘벌교 촌놈’에서 ‘386 최고의 명연설가’로

정 회장은 불교와 어려서부터 큰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벌교 촌놈’이던 꼬마 때 벌교에 송광사 포교단이 초파일을 맞아 방문하자 할머니 손을 잡고 갔던 게 “금생에 있어 첫 인연”이었다고 한다.

불교학교인 동국대 철학과에 들어갈 때만 해도 불교를 신앙이라기보다 철학적 사유체계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고 ‘철학공부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스스로 “똘아이 기질이 있다”며 웃는 그는 당시 1지망, 2지망, 3지망을 모두 ‘철학과’로 선택할 만큼 철학공부에 ‘꽂혀’ 있었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가 그는 동아리 동국문학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소위 ‘한 손에는 시집, 한 손에는 짱돌’을 들었던 때였지요. 제가 88학번인데 그 때 즉흥시가 유행이었어요. 데모 나가서 최루가스 마시고 돌아오면 도서관 앞에 모여서 시 한 구절 씩 읊어대는 거죠.”

그는 1학년 때부터 마이크만 잡았다 하면 멋들어진 연설로 유명했다고 한다.

“모습은 울퉁불퉁해도 ‘벗이여’ 하면서 때론 파도처럼 몰아치고, 바위처럼 침묵하게 하고, 가슴을 쥐락펴락 하다가 눈물도 짜고 웃음도 쏟아내고, 연설 하나는 제가 봐도 멋있었어요. 어떤 분은 ‘386 최고의 명연설가다’라는 말씀도 해주시더라고요.”

대학 입학 3개월 만에 동국대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인사가 됐다. 연설도 연설이고 거리에 나서면 앞서서 싸우다보니 경찰 채증 사진에 총학생회장보다 많이 찍힐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전두환 이순자 구속투쟁’이 한창일 때 대학로에서 백골단이 던진 돌덩이에 머리를 맞으면서 큰 고생을 했다. 실어증까지 경험했다. 이후 건강이 회복됐지만 그래도 대학 1학년 때의 쏟아져나오던 ‘명연설’만은 돌아오지 않아 여전히 아쉬운 구석이다.

총학생회장을 한 건 1991년이지만 실질적으로 1989년부터 수배를 당했다. “동국대가 이상하게 싸움꾼들이 많고 해서요.(웃음) 1989년 4월부터 내부적으로 수배를 당했고, 공식적으로는 서남총련 조국통일위원장을 했던 1991년 8월부터 지명수배를 당하게 됐죠.”

뜨거웠던 학생운동 시절. 그는 유난히 단식농성도 여러 차례 했다. 그는 “동국대는 삭발이 효력이 없어요. 확실하게 삭발을 한 스님들이 계시잖아요?”라며 웃는다.

1989년에는 5월 21일부터 6월 10일까지 명동성당에서 단식농성을 했다. 500여 명으로 시작해 최후까지 남았던 사람은 20여 명에 불과했다. 그렇게 17일 간 단식을 하고도 나오면 병원에 가서 몸을 추스르기는커녕 소주 한 잔 마시면서 정리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이후 1992년 경찰에 붙잡혔지만 다행히 구속은 피할 수 있었다.

생면부지의 스님이 준 새 생명

수배생활에 툭 하면 단식을 하고, 뜨거웠던 학생운동 시절을 지난 후 그는 만성신부전증을 앓게 됐다. 건강이 악화해도 병원에 가거나 제 때 손을 쓰지 못했던 탓이리라.

병이 심할 땐 일주일에 세 번씩 4시간 가량 혈액투석을 받아야 했다. 수분이 밖으로 배출되질 않고 혈관에 쌓이다보니 체중이 55kg에서 77kg으로 늘었고, 몸이 퉁퉁 부어 살을 누르면 서서히 들어갔다가 아주 천천히 회복되는 지경이었다.

그 때 그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91년 총학생회장 할 때 운동하던 후배들이 가장 고맙지요. 학교 때 라면 한 번 사준 적 없는, 알지도 못하는 후배 녀석들이 ‘일일찻집’도 하고 ‘영화제’도 열고 그렇게 애를 써줬어요. 후배 몇몇이 화계사에 가서 3천배 기도를 해주고 TV에 나온 적도 있고요.”

그러던 중 그는 생면부지의 스님 한 분과 인연이 닿아 신장을 기증받아 새 생명을 얻게 됐다.

그가 불교와, 그리고 대불청과 직접 인연이 닿게 된 것은 1996년이다. 동국대 총학생회장 할 때 부총학생회장 했던 친구가 사회 진출을 고민하는 그에게 대불청 상근활동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 친구는 지금 출가해 스님이 됐다고 한다.

‘청년회’ 활동의 취지도 그의 고민과 잘 맞았고 특히 대불청이라는 조직의 뿌리인 민족의 지도자 만해 스님의 뜻도 그에게 와 닿았다. 사회활동과 수행, 불교활동이 결코 둘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1996년 상근조직부장을 맡아 대불청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대불청 조직부장, 조직국장, 정책기획실장, 만해대학 운영위원, 통일추진위원장, 시민사회위원장 등을 거쳤고 조계사청년회 기획실장과 회장, 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면서 불교 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대에 만해정신을 되살리자”

그리고 2011년, 그는 대불청 신임 회장으로 나서면서 “서원이 없는 청년불자는 청년불자가 아니다” 라는 말을 ‘모토’로 내걸었다.

“서원(誓願)은 조직이나 사람으로 보면 비전이나 목표일 테고, 개인의 삶에서 좌우명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부분이 없으면 사명감이 없는 것이니까 자신에게 충실해지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부처님도 깨달음을 이루겠다, 생사고해에서 벗어나겠다는 서원을 세웠고 이를 위해 피나는 정진을 했고 성취 후에는 이를 모든 중생과 나누기 위해 회향을 한 것이죠. 즉 사회적 실천을 한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청년불자라면 의당 서원을 가지고 정진해야 하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일반인들의 말로 표현하면 내 가슴 속에 품어본 세상이 있어야 눈물도 간난신고도 마다치 않을 수 있는 거잖아요?

‘어떤 서원을 세울 건가’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아요. 왜냐. 사람이 깨끗한 한 마음을 내는 그것이 다 부처님 마음이지요. 성철 스님께서 8년 장좌불와(長坐不臥) 하면서 정진하신 것과, 아침에 열 살 짜리 아이가 ‘엄마 아빠 오늘도 건강하게 잘 보내세요’ 이런 마음을 내는 것과 저울로 잰다면 한 치도 오차가 없이 평형을 이룰 거예요. 어떤 서원이냐가 아니라 서원을 내는 그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요.”


구체적으로 그는 대불청의 창립자인 만해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청년불자들에게 제안하고 있다.

“1920년 6월 20일 대불청을 창립한 취지가 불교를 통한 민족의 각성과 조국의 자주독립에 대한 염원이었어요. 불교의 정신을 만해 스님 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일제 치하에서 중생들이 자기 삶의 주인이면서도 현실에서는 시대고, 중생고로 고통받고 있었으니까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라, 식민치하에서 벗어나 광복의 햇살이 들어야 한다, 이러한 정신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청년불자들은 창립정신대로 살고 있는가, 주인답게 살고 있는가, 시대고와 중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사회적 실천을 하고 있는가 되묻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남북이 분단이 돼서 민족이 고통받고 있는데 청년불자로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간만을 위한 행위로 파괴되고 몸살을 앓고 있는 4대강을 살리기 위해, 양극화로 인해 고통 받는 중생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창립정신으로 돌아가 우리가 그런 부분에서도 나서야 한다, 그런 생각입니다.”

또 그는 만해 스님의 뜻을 이어받아 청년불자들이 사회적 기여도 많이 하길 바란다.

“청년회 내에 청소년 지도사나 사회복지사가 많아요. 이런 전문성을 가지고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활동 속에서도 만해정신을 실천해가고 싶어요. 만해봉사단을 만들 계획도 있습니다. 서원이라는 것이 뜬구름 잡듯 논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꽃펴야 하는 거니까요.”

신임 회장으로서 그가 꿈꾸는 또 하나는 대불청이 이 땅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단체가 되는 것이다.

“절망하고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안심을 주는 조직이고 싶어요.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사회생활이나 직장 문제에서 생기는 두려움 등 힘겨운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서 ‘대한민국 대표 희망.안심 서비스 조직’이 되겠다고 밝힌 겁니다. 많은 시민들이 대불청에 관심과 격려를 보내 주시고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셨으면 합니다.”

<정지영 기자 jjy@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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