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역경원 출범 37년만에 한글대장경이 완간됐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2001년 9월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는 1만여 불자들이 모여 회향법회를 봉행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1962년 출범한 통합종단은 포교와 역경, 도제양성을 종단 3대사업으로 지정했다.

부처님 가르침을 우리말로 전하는 역경사업의 역사는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겸익(謙益)스님이 산스크리트어 율장(律藏)을 직역하면서 비롯됐다. 물론 한문으로의 역경이었지만 우리글이 없었던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불전 번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경전 번역은 조선 세종 28년(1446)에 한글이 반포되면서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이 편찬되고, 세조 7년(1461) 간경도감(刊經都監)이 설치되면서 <금강경>, <법화경>, <능엄경> 등 언해본이 간행된 것이라 봐야 한다. 조선시대 역경을 특징하는 것은 관(官) 주도, 즉 국가가 역경사업을 담당했다는 사실이다.

그 후 황폐했던 역경사업은 조선 말기 들어 경허스님이 <참선곡> 등을 국한문 혼용 혹은 한글로 짓고, 더불어 1920년대 초 백용성스님이 ‘삼장역회’를 조직하고 경전을 번역하면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64년 7월21일. 통합종단 50년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종단 3대 사업 중 하나인 ‘역경(譯經)’사업의 본격적인 태동을 선언한 까닭이다. 종단 차원의 역경사업은 1963년 2월 제3회 종회에서 역경위원회법을 제정하면서부터 시작됐다.

1964년 7월 동국역경원 출범

37년 후 한글대장경 완간 ‘성과’

세계 최다어 ‘가산대사림’ 주목

종단 역경위원회는 동국대와 협력해 부설기관으로 ‘동국역경원’을 출범시켰다. 1965년 6월 <장아함경>의 발간을 시작으로 대장경의 한글화 작업이 본격화됐다. 2001년 4월25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기념일이었다. 동국역경원 출범 37년만에 전 318권의 <한글대장경>을 완간했던 것이다.

이런 야심한 출발과 성공적인 회향에도 불구하고 역경사업은 그야말로 역경과 고난의 세월을 겪고 있다. 초기 역경사업을 주도했던 운허스님과 자운.관응.탄허.석주스님 등이 사바세계를 등지면서 역경사업에 대한 종단 비중도 점차 약화돼 갔다.

특히 운허스님은 역경위원회 위원장이자 초대 동국역경원장으로서, “역경사업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고, 다음 생에도 역경사업을 하겠다”고 할만큼 종단 불사에 초석을 놓았다. 운허스님의 원력은 자운, 영암, 월운스님에게로 이어져갔다.

역경사업을 활발히 이끌어 갈 동력은 전문인력과 재정적 뒷받침. 특히 재정문제는 역경사업의 발목을 붙잡았다. 종단이 세운 동국역경원이었지만 실제 예산을 보면 정부보조금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2000년대 들어 정부 지원사업이 마무리되면서 역경불사는 어려움에 처했다.

한글대장경은 완간했지만 디지털화 및 체제 정비 등 후속작업이 현재까지도 완료되지 못한 상태다. 여기에 동국대가 2009년 교책연구기관인 불교학술원을 설립하면서 동국역경원을 산하기구로 편제시켜 위상까지 하락했다.

역경은 종단 주도 사업과 함께 개별 단체의 원력으로 활기를 띄었다. 대표적인 기관이 가산불교문화연구원과 고려대장경연구소다.

전 총무원장 지관스님이 지난 1991년 세운 연구원은 세계 최다의 표제어를 수록한 불교대백과사전 <가산불교대사림> 발간에 매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13권이 편찬됐으며 지관스님의 입적에도 불구하고 완간에 자신감을 표하고 있다.

   
세계 최다 표제어를 자랑하는 <가산불교대사림> (사진 위)과 지난해 한글본을 완역한 <한국전통사상총서>. 불교신문 자료사진
1993년 고려 팔만대장경의 보존과 계승.발전을 목적으로 설립한 고려대장경연구소는 대장경의 전산화에 심혈을 기울여 2000년 고려대장경 전체를 CD에 담아내는 대작을 완수했다. 이와 함께 역경사업을 이끌어갈 인재 양성을 위해 중앙승가대가 역경학과를 1997년 개설하면서 미래의 역경사(譯經師)들이 배출되고 있다.

현재 들어 역경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종단이 직접 역경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총무원장 스님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의 ‘한국전통사상총서 간행사업’이 그것이다. 한국불교 고승대덕들의 주요 저술을 13권에 담아 한글과 영어로 번역하는 사업으로, 지난해 한역본을 완간한데 이어 오는 6월까지 영역본도 완간한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33대 총무원 집행부는 ‘한글 반야심경’을 공포했다. 기존 역경사업이 우리말 번역에 치중했다면 대중화 실용화에 방점이 찍힌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4월 의례위원회를 설립한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한글 반야심경 의결 공포에 이어 칠정례와 천수경, 불공, 시식, 상장례 등 다양한 의례의식이 잇따라 한글화될 것으로 보여 기대된다.

초기 혼란을 겪었던 동국대 불교학술원도 인환스님이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역경사업에 대한 대계를 세우고 있다. ‘21세기 통합대장경 디지털아카이브 구축사업’은 한국불교 관련 원전을 집대성해 역주를 달고 디지털화할 계획이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재정과 관련, 인환스님은 “국고보조금에 의존해 단기적 연차성과에 급급했던 과거 역경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불교학진흥기금을 개설해 중장기적 사업을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전문인력·재정 확충 과제 여전

“종단차원 통합시스템 마련 시급”

기록문화유산…정부 지원 필요

이와 함께 조계종 교육원과 동국대 불교학술원이 지난 1월 한문불전 번역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교육협력 약정을 체결하면서 미래 역경사 양성의 청신호를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역경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최첨단 정보화 시대에 발맞춰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워낙 역경사업이 ‘역경(逆境)’ 속에서 이어온 만큼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종단적으로 합의된 인식을 바탕으로 총체적인 시스템 점검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우세하다. 종단이 동국역경원, 중앙승가대, 고려대장경연구소 등 흩어져 있는 역경관련기관들과 함께 역경사업에 대한 밑그림을 다시 그리면서 경쟁이 아닌 공동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새로운 역경사업은 전문인력 양성과 재정 확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방향을 함께 모색하면서, 윈-윈 전략을 세워야 한다. 기존 한글대장경에 대한 원전 비교 및 윤문, 현대적 언어로의 변형 등도 고려해야 할 대상이다.

최종남 중앙승가대 역경학과 교수는 “한문뿐 아니라 팔리어,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등에 모두 능통한 역경사 양성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종단이 받아 안아야 한다”며 “전문인력 양성과 활동할 수 있는 기관을 활성화시키는 일 또한 종단차원에서 진행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최 교수는 “같은 원전을 번역하면서 해석 방식이 다르면 그 피곤함은 고스란히 불자들의 몫”이라며 “종단을 중심으로 역경에 대한 통합시스템 구축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조선시대 역경이 국책사업이었을 정도로 국가의 중대한 과업이자 기록문화유산이므로 정부차원에서의 관심과 지원도 촉구된다.
 

■ 역경의 또 다른 이름 ‘불교출판’

2010년 현재 1만4천종 발간

1990년대 들어 전성기 맞아

‘경전번역’이 역경의 순수한 뜻이라면, 부처님 가르침을 다양한 각도에서 각자의 근기에 맞춰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출판은 역경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근대에 들어 최초의 불교출판물은 1912년 대창서원에서 나온 현공렴의 <석가여래전>으로 알려졌다. 이후 1세기 동안 불교서적은 2010년 현재 1만4000여 종이 출판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 전까지 불교출판은 암흑기 혹은 공백기에 해당된다. 이 가운데에서도 춘원 이광수가 1948년 펴낸 <원효대사>는 불교소설 최초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1960년대는 불교출판의 본격적인 태동기라 일컬을만하다.

1961년 운허스님의 <불교사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불교사전으로서 역사에 길이 남았다. 대한불교청년회의 <우리말 팔만대장경>(1963년)도 척박한 상황을 떨쳐 일어선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0년대는 스님 문인의 등장이 현저하다. 무산.성우.석지현.정휴스님 등이 등단한 데 이어, 법정스님이 <무소유>(1976년)를 들고 나온 시기다. <불교성전>(1972년)은 종단차원에서 발행한 최초의 한글 불교성전으로 스테디셀러로서 현재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980년대는 불교 소설이 강세를 나타냈다. 김성동의 구도소설 <만다라>(1979년)의 히트를 시작으로, 정휴스님, 한승원, 남지심 등이 이어가면서 불교문학을 살찌웠다. 성철스님의 <선문정로>(1981년)는 한국사회에 수행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게 했다.

1990년대는 전성기라고 할 만하다. 소설, 학술, 문화, 입문서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발간이 뚜렷했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저자들이 일제히 불교관련 대중서적을 출판했다.

2000년대는 달라이라마와 틱낫한 스님을 필두로 하는 수행.명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반영했다. 조계종 사상 처음으로 발간된 <간화선>(2005년) 등도 수행의 대중화 시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침체와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면서 불교출판계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모색이 활발하다. 불광출판사가 무비스님의 <신금강경강의>를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제작해 배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불교신문 2803호/ 3월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