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선진규 김해 봉화산정토원장 별세 (대한불교청년회 10대, 11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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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한불청지기 작성일20-07-02 16:25 조회2,459회 댓글0건본문
선진규 김해 봉화산정토원장 별세
선진규
평생 불법홍포에 앞장서온 선진규 김해 봉화산정토원장이 6월8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장례식장은 경남 김해 진영전문장례식장 특 20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6월11일이다. 장지는 김해추모의공원에서 화장 후 정토원에 안장된다.
선진규 원장은 1934년 4월 김해 한림면 장방마을에서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6년 동국대에 입학한 선 원장은 학창 시절 민주화 운동과 불교 운동가로 활동했다. 이후 대한불교청년회장과 조계종 포교사로 활동하며 60여 년 동안 불법홍포에 앞장서 왔다.
봉화산 정토원은 1920년대 자암사라 불리는 작은 암자였다. 선 원장의 조모가 자주 찾아 불공을 올렸고 그 때마다 어린 선 원장은 할머니 손에 이끌려 왔었다. 6.25 전쟁 이후 화일사란 이름으로 단장한 정토원은 1958년 선 원장이 백성욱 총장에게 농촌계몽운동을 도와달라는 말에 토지 11만5703㎡(35000평)에 35만원을 지원받아 봉화사로 다시 태어났다.
1959년 부정과 독재가 난무하는 자유당 말기 동국대 불교학도 31명은 봉화산 정상에 개발을 상징하는 호미 든 관음상을 봉안했다.
김해 진영전문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이때부터 선진규 원장은 식목과 개간에 앞장서면서 본격적인 농촌운동에 돌입했다. 1967년엔 사명대사와 만해스님 상(像)을 세웠고 1972년 조계종 중앙 상임포교사로 발탁됐다. 이후 1983년 화재로 전소한 정토원에 조립식 건물을 세우고 정토신행에 근거한 포교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봉화산청소년수련원을 건립해 청소년 교육포교 공로로 2006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상임포교사 시절엔 대한불교청년회장을 맡으면서 만해전국백일장, 만해사상 강연회 및 세미나 등을 통해 만해스님 선양사업을 본격화했다.
200여 회의 설법회를 열고 16개 지회를 가진 청년회를 3년만에 무려 240개로 늘렸고 첫 찬불가 LP판을 제작하기도 했다. 10.27법난을 세상에 알리는데 적극 나섰고 한일불교청년회 교류협정 체결 등 한국불교 국제화에도 앞장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선 원장은 매년 봉화산 정토원에서 추모법회를 봉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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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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