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백일장 제 46회 전국만해백일장 만해대상 작품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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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한불청지기 작성일26-05-08 10:02 조회26회 댓글0건본문
목소리
임하율
가위를 쥔 손이 잠시 멈췄다. 노란색 깃이 햇빛을 받아 유리처럼 빛난다. 앵무새는 내 손에 붙잡힌 채 고개를 기웃거리며 나지막이 울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 올라왔다.
“금방 다시 자라요. 날개를 자르는 건, 앵무새가 낯선 공간에서 날아다니다가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예요.”
가게 주인이 무심하게 말했다. 바닥엔, 얇은 깃털 조각들이 떨어져 있었다.
앵무새는 한동안 날지 못했다. 횃대 위에서 짧게 날갯짓을 해보다가도 이내 포기한 듯 몸을 낮췄다. 불안정하고 무기력한 눈빛으로 깃을 축 늘어뜨렸다. 그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그날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섰다.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가 하시는 미용실 문고리를 잡았을 때, 뿌연 유리면 너머로 엄마가 보였다. 거울 앞에서. 주인 모를 머리카락을 밟고 선 엄마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빠의 곁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미소였다. 엄마의 그 커다란 미소는 내가 들어갈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꽉 쥐고 있던 문고리의 한기가 손끝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끝내 그 문을 열지 못했다. 터미널로 향한 길 위에서 나는 주머니에 있던 깃털들을 꺼내었다. 엄마에게 보여주려고 가져온 것이었다.
손땀에 젖어 축축해진 깃털들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바람에 실려 깃털 조각들이 점점 사라져 갔다. 어쩌면 지금쯤 바다 위를 둥둥 날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앵무새는 조금씩 변해 갔다. 날개는 여전히 짧았지만, 점차 적응해 나가는 듯했다. 작은 깃털 사이에는 또렷한 생기가 깃들어 있었고 처음의 불안한 흔들림 대신 그 속에서는 무언가가 천천히 자라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는 재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엄마와 나와 같은 나이의 딸. 두 개의 집이 합쳐질 거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될지, 그 가족은 어떤 모습일지, 그런 생각들 속에서 나는 더욱더 작아지기만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앵무새의 날개가 자라난 것을 보았다. 힘찬 날갯짓과 발돋움 뒤에 앵무새는 가볍게 날아올랐다. 방 안을 한 바퀴 돌고 내 손 위로 돌아왔다. 짧은 거리였지만 이번에는 부딪히지 않았다. 앵무새의 작고 따뜻한 몸이 손에 닿았다. 그 모습이 더욱더 벅차게 느껴졌다. 앵무새는 이제 이 공간을 알고 있는 듯했다.
앵무새가 이렇게 날 수 있게 된 건, ‘날개가 잘려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개’라는, 어쩌면 자신을 가장 크게 지탱해 주고 있는 그 커다란 깃들을, 앵무새는 내려놓았고, 시간이 지나 다시 날 수 있게 되었다. 버려진 깃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앵무새는 이 공간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저 다시 돋아난 새 날개도 이곳에 머물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나는 아직도 엄마와 아빠가 왜 헤어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 속에서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나는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새로운 공간을 살아가야 하는지. 새로 자라난 날개를 딛고 어떻게 날아가야 하는지.
그날 밤, 앵무새는 내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따뜻하고 힘찬 온기가 어깨로 깃들었다. 나는 앵무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었다. 샛노란 깃털들이 손가락 사이로 돋아났다.
“괜찮아.” 앵무새에게 작게 속삭였다. 커다란 떨림이 깃든 그 목소리가, 앵무새를 향한 것인지, 나를 향한 것인지, 나는 끝내 구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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