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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초조대장경 조성 천년의 해 특별전 "천년의 지혜 천년의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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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창호 작성일11-09-22 12:49 조회3,815회 댓글0건

본문

 
  • ㆍ전 시 명 :초조대장경 조성 천년의 해 기념 특별전 '천년의 지혜 천년의 그릇'
  • ㆍ전시기간 :2011.09.21 ~ 2011.11.12 
       관람시간 오전9시~ 오후6시 / 무료 / 매주 월요일 휴관
       불교중앙박물관 (전화 2011-1960)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옆

  • ㆍ전시개요 :올해는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을 새기기 시작한 지 천 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장경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교의 기록물들을 선별하고 체계화, 목록화하여 한 자리에 모은 불교적 지식의 총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장경은 당시 불교문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문화의 보고寶庫이며, 인쇄물의 형태로 제작되어 경전의 유통과 보급에도 큰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불교가 전해진 각국에서는 자신들의 역량에 맞추어 자신들의 언어로 대장경을 만들어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천 년이 지나 우리에게 전해진 고려의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고 있는 천년의 그릇입니다. 본 특별전은 문화와 기술 그리고 학술의 바탕에서 조성된 대장경의 의미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그 문화적·역사적 가치에 대해 이해하는 장으로 대장경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초조본初彫本 『신찬일체경원품차록新纘一切經原品次錄』을 포함한 국보·보물로 지정된 초조대장경 인출본 다수를 비롯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 장경판전에 소장되어 있는 재조대장경 목판인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高麗國新雕大藏校訂別錄』목판,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목판이 출품되며, 국보 7점, 보물31점이 포함된 총 164점의 고려대장경 관련 유물들이 2011년 9월 21일(수)부터 11월 12일(토)까지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됩니다. 본 특별전은 초조대장경 조성 천 년을 기념하여 많은 사람들이 대장경의 중요성과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된 내용들을 쉽게 소개하고자 준비하였습니다.

전시관 구성

제 1 주제

天 . 말씀을 담는 그릇, 대장경大藏經

대장경은 세상의 모든 불교 문헌들을 모은 불법佛法의 총체입니다. 경, 율, 론의 삼장三藏을 비롯하여 구법기, 행장, 전기, 어록, 사전 등 부처님의 열반涅槃 이후부터 현재까지  전해지는 모든 불교의 문헌들을 기준에 따라 선별하여 체계화한 것이 바로 대장경입니다. 그래서 창고, 그릇을 뜻하는 ‘장藏’ 자를 사용하여 큰 그릇이라는 뜻으로 대장大藏이라 합니다.

부처님이 입멸하자 제자들은 부처님이 설하였던 말씀들을 정리하고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또, 불교의 교리가 발전함에 따라 불법에 대한 여러 이론들도 기록되어 방대한 양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성립된 경전과 문헌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전해졌고, 마침내 최초의 대장경이 성립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불교가 전래된 모든 시대, 모든 국가에서는 대장경을 조성하여 그 종류도 수십 종에 이르며, 오늘날까지 대장경의 조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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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주제

地 . 고려에서 대장경을 처음 새기다 -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고·중세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국가의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는 불교문화였습니다. 북송北宋에서 983년에 처음으로 개보대장경開寶大藏經이 만들어져 고려에 전해지면서, 고려에서도 대장경을 판각하여 문화국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거란의 침입이 빈번했던 현실도 대장경의 판각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으니, 

이를 통해 부처님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현종 2년(1011)부터 판각되기 시작한 대장경이 고려에서 처음 만든 대장경인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입니다. 고려에서 송에 이어 두 번째로 대장경을 판각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고려의 문화가 대장경을 판각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조대장경은 본래 개경의 흥왕사興王寺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팔공산의 부인사符仁寺로 이운되었고, 고종 19년(1232)에 몽고의 침입을 받아 경판이 모두 불에 타 없어지게 되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그러나 학계의 연구가 진행되면서 일본 난젠지南禪寺에 경판을 종이에 인출한 초조대장경들이 다수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되었고, 국내·외에서도 초조대장경 인출본들이 다수 별견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대장경에는 개보대장경開寶大藏經에 속한 경전 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대장경과 국내에서만 전해지던 경전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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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주제

玄. 대각국사 의천스님과 교장敎藏

대각국사 의천스님은 경經·율律·론論 삼장三藏을 바탕으로 한 대장경이 후세에 전해진다 하더라도 정확한 해설서가 없으면 그 법法의 진상을 알기는 힘들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대각국사는 대장경에 대한 각종 해설서와 연구 성과물인 연구주석서(장소章疏)를 신라 고승의 저술 400여 권을 포함하여 송, 요, 일본 등에서 모아들인 뒤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편집과 교정을 거쳐 4천여 권의 교장敎藏을 간행합니다.

교장은 경·율·론 삼장을 중심으로 한 대장경과는 달리 대장경에서 제외된 연구주석서들만 모은 새로운 총서로서, 한 때 일본 학자에 의해 대장경의 속본續本이라는 뜻으로 ‘속장경續藏經’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계불교사에서 의천스님에 의해 최초로 기획 창안된 교장은 대장경과 구별되어 교장이라 이름 짓는 것이 올바르다 하겠습니다. 교장은 대장경을 구성하는 삼장에서 더욱 확대된 또 하나의 장藏을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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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주제

黃. 우리 손으로 승화 재해석하다 -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

재조대장경은 몽고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이 소실된 후 두 번째로 만들어진 대장경으로 고려 왕실과 무신정권의 집권자인 최이崔怡(또는 최우崔瑀)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것입니다. 재조대장경은 약 16년에 걸쳐 간행되었는데,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만여 장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

고 하여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도 부릅니다. 초조와 교장이 소실된 반면,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온전하게 보존되어 왔던 까닭에, ‘고려대장경은 팔만대장경’이라는 것이 세간의 상식으로 널리 알려져 왔습니다.

대장경 사업을 주관한 개태사開泰寺 승통僧統인 수기대사守其大師는 개보대장경, 거란대장경, 초조대장경을 참고하여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아 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30여 명의 교정승과 함께 대장경 전반에 걸쳐 교정한 내용과 사유를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高麗國新雕大藏校正別錄에 적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개보대장경이나 거란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재조대장경은 수천만 자의 글자가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입니다. 조선시대에 해인사로 옮겨진 재조대장경판은 국보 32호로 지정되었고, 근래에는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여 세계인의 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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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주제

宇. 고려대장경의 전승과 발전

고려가 멸망하고 새롭게 들어선 조선왕조는 국초부터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을 펼쳤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대장경은 왕실과 민간의 지원 속에서 끊임없이 인출되었습니다.

경전을 간행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경판들을 제작하고 인출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과 대규모의 인력이 필요했는데, 왕실의 직·간접적인 후원을 통해 사찰이나 간경도감刊經都監 주도하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경판들이 인출되거나 우리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전의 간행은 조선 초 왕실과 간경도감 주도로 성행하다가 이후 15세기 간경도감이 폐지되면서 경전의 간행은 사찰 중심으로 변해갑니다. 

고려의 대장경은 국난 속에서 어렵게 탄생했지만, 보전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고려 말부터 계속된 극심한 왜구 문제로 한·일간의 외교 관계가 활발해지면서 대장경은 하나의 거래물품이 되어 일본으로 반출되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으로 유입된 고려대장경은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그 가치를 재평가 받게 됩니다. 

이 가운데 일본 정토종의 승려였던 닌쵸(忍?, 1645~1711)는 고려대장경이 다른 판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무결한 교정본이라는 사실을 철저한 대교(對校, 비교를 통한 교정)를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하였고, 이러한 과학적인 평가가 있었기 때문에 이후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을 비롯한 일본에서 출간한 많은 대장경들은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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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다시 일천년을 내다보며 뉴 미디어 시대

    천년의 지혜, 팔만사천의 법문

    우리말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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