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가짜 염불을 경고함(정목스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영만 작성일12-09-18 08:01 조회3,962회 댓글4건본문
글 쓴 이 : 백 송(정목스님)
1913년 5월 25일 백담사 만해 한용운스님은 [불교유신론]에서 가염불당(假念佛堂)의 폐지를 이렇게 역설하였습니다.
지금 말하는 것은 중생의 가염불(假念佛)을 폐지하고 진염불(眞念佛)을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가염불(假念佛)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의 염불을 말하는 것이니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이것입니다.
진염불(眞念佛)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마음을 염(念)하여 나도 역시 그런 마음을 갖고, 부처님의 교학을 염(念)하여 나도 역시 그것을 배우고, 부처님의 행(行)을 염(念)하여 나도 역시 그것을 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일어 일묵 일정 일동(一語 一黙 一靜 一動)이라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음이 없고, 그 진가권실(眞假權實)을 택하여 내가 거기에 실답게 있다면 이것이 진염불(眞念佛)입니다.
대개 참되지 못한 염불을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폐지 하자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함은 이에 가염불(假念佛)의 모임일 뿐입니다.
동일한 불성(佛性)의 엄연한 칠척(七尺)으로 밝은 대낮, 맑은 하늘 가운데 모여 앉아서 북가죽을 두드리고 동전조각을 잡고 놀면서 무의미한 소리로 구몽일각중(九夢一覺中)에서 응낙하지 않는 명호를 부르니 과연 어찌된 것입니까?
이를 보건데 염불(念佛)하는 그 폐단이 어떠한가요? 무슨 일을 막론하고 마음으로서 염(念)하는 자는 대저 인품으로서 알수 있을 것이나, 천하에 소리로써 염하는 자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만일 진염불자(眞念佛者)일진대는 농업 공업 상업 어디에도 복무하며 무슨 일을 하더라도 모두가 염불을 가히 행할수 있을 것이니, 반드시 당상(堂上)에 모여 앉아 저렇게 소리의 기계가 있은 연후에 비로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누가 만일 가염불(假念佛)을 폐지하면 사람과 더불어 재물에 백 가지가 이익되고 한 가지의 손해도 없을 것입니다. 범부와 성인이 서로 통하고 용과 뱀이 혼잡한 것이며, 불문(佛門)이 광대하여 이렇게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것이라 합니다.
비록 그러하지만 권(權)으로서 중도(中道)를 얻지 못하면 가히 할만한 교(敎)가 아니오, 가(假)로서 때를 만나지 못하면 가히 할만한 교(敎)가 아닐 것입니다.
군왕이 비단옷을 좋아하니 궁중에 굶어 죽는 자가 많고, 장안에서 벼슬을 좋아하니 지방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의 많은 방편에 말세의 폐단이 여기서 극에 달했습니다.
슬프도다! 의사의 문전에 환자가 많고, 관을 만드는 곳에 발길이 한가한 법이지만, 나같은 중생이 오히려 번성함을 걱정하는데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시니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원효성사는 염불자는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고 그것도 아니면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보리심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계가 밝아지는 정토가 아니라, 오직 복받을 것이라는 믿음만으로 염불한다면 그것은 사실 불교가 아닙니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화엄성중을 부르는 염불자들이 모두 어떤 마음으로 행하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불러도 신심 지성심 원왕생심이 없으면 염불을 권하는 뜻을 저버리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출처: 아미타파(http://cafe.daum.net/amitapa/)
댓글목록
김영만님의 댓글
김영만 작성일
도로아미타불의 참뜻은 무엇인가? (펌)
조선 말기에 전국 곳곳에서 아미타불 염불회가 성행하면서 불교의 기운이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염불의 의미도 모른 채 입으로만 내세의 극락왕생만을
빌고 있다면서 가짜염불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십년을 공부해도 헛되이 힘만 쓰며 나무아미타불만 찾는다는 뜻으로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十年工夫 徒勞阿彌陀佛)"이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공들인 일이 허사로 돌아갈 때, 혹은 진행하던 일이 원점으로 돌아갈 때 쓰는 속담으로
도로아미타불(徒勞阿彌陀佛)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눈 밝은 선지식을 가진 분들이라면 이것이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임을 밝히고
십념공부 도로아미타불(十念工夫 都露彌陀佛)의 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는 경전에서 말한 참다운 수행법이요 진리이기 때문이다.
십념(十念:끊임없이 염불함)을 십년(十年)으로,
도로(都:모두 도, 露:드러날 로)를 도로(徒:한갓 도, 勞:힘쓸 로)로 바꿔
염불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의해 잘못 전해지고 있다.
도로아미타불의 참뜻은(?) 우주 만법(萬法)의 근원은 일광(一光)이며,
그 광명이 시방삼세(十方三世)에 무량하니 마침내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은
아미타불의 광명정토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한 도로아미타불이라고 본다.
비록 세인들이 도(徒)를 무리 도(徒)요 모두 도(都)라 하고
로(勞)는 일할 로, 힘쓸 로(勞)로 바꾸어 비꼬아 쓰고 있는 말이지만
무리 도(徒)란 성인(聖人)들이요 불교에서는 보살들을 말하니 성인들이라는 보살들이
십념(十念)으로 염불하여 수고(勞)한 것들은 모두(都) 아미타불이 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면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며
도(都)는 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都)을 말하고 로(露)는 이슬 로이니
성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깨끗한 이슬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都) 아미타불로 드러나게(露) 되어있다는 고백이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부르다가 실망하니 도로(徒勞)아미타불이라 하였지만
성인들이 이루어 놓은 진심(眞心)으로 염원(念願)하여 정토(淨土)에 다시 태어나
왕생(往生)하게 되면 모두가 아미타불의 세계이니 이것이 도로아미타불이라는 것이요
구원(救援)을 간절히 원하여 일심법(一心法)을 자각하면 다시 생사(生死)의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도로아미타불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허망한 속담으로 전해오는 도로아미타불이
불변의 진리라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몫이니
부디 성불하여 도로아미타불의 참 뜻을 찾아야 할 것이다.
김영만님의 댓글
김영만 작성일
'도로아미타불' 의 유래 (펌)
금강산 장안사에 만송(滿松)이라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만송스님 문하에 젊은 행자가 한분 있었는데, 머리가 나빠서 경학(經學)공부는
가망이 없는지라 석두(石頭)라는 별명으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송 스님은 석두 행자를 달리 가르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왕생극락의 원(願)을 세우고 아미타불만 계속해서 부르라고 일렀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단순하다던가요? 석두 행자도 만송 스님의 지시대로
10년 세월을 아미타불만 불렀습니다.
어느 날 만송 스님이 석두행자에게 편지를 주시며
직지사에 있는 도반에게 전하라는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금강산에서 직지사까지는 빨리 걸어도 일주일이 걸린답니다.
석두 행자는 편지를 건네 받자 즉시 아미타불을 염송하면서 달려가다 보니
어느결에 왔는지 직지사에 도착했습니다. 편지를 전해 받아 읽고 난 스님께서
석두에게 물었습니다.
"너 언제 장안사에서 출발했더냐?"
"아침 먹고 출발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먹고 출발했단 말이냐?"
"오늘 아침 먹고 출발했습니다."
"그래?"
편지에 기록된 날짜도 분명 오늘 날짜인데 하루 동안에 어떻게 이 먼길을 걸어 올 수
있었겠는가? 필시 신력(神力)이 없고서야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 스님께서 다시 묻기를,
"네가 무슨 공부를 했더냐?"
"공부인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만송 스님께서 아미타불만 하라고 해서 계속 그것만 외웠습니다.
무엇을 하든 그것을 하면 해가 뜨는지 밤이 오는지 모르고, 배가 고프고 춥고 더운 것도 모릅니다.
잠속에서 꿈을 꾸어도 아미타불을 외우는 것이 버릇이 되었습니다. 여기 올 때도
아미타불만 부르고 오니 강을 건넜는지 산을 넘었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왔습니다."
"그래. 그렇겠다. 그런데 아미타불은 부처님의 명호니 부처님 이름만 부르는 것보다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하고 의지한다는 뜻의 "나무"를 넣어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석두 행자는 10년을 "아미타불"만 해오던 것이 습관으로 굳어져서
갑자기 "나무아미타불"을 하자니 혼동이 되어 되돌아오는 길에서 염불을 하다가
자주 멈추게 되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하다가 다시 "아미타불"로 바꾸고 또 걸음을 멈추고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돌아오는 길에는 일주일이 꼬박 걸렸습니다.
만송 스님께서 어찌하여 이렇게 늦었냐고 묻자,
"아미타불과 나무아미타불을 섞어서 부르다 보니까 어려워서 이렇게 늦었습니다."
"야 이놈아, 아미타불이 나무아미타불이고 나무아미타불이 아미타불이다."
만송 스님의 이 말씀에 석두가 깜짝 놀라 깨닫고 나서 하는 말이,
"도로 아미타불이네요. 그렇다면 그 타불이나, 이 타불이 똑 같듯이
나도 과거에는 아미타불이었네."하고 외치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석두는 스스로 간직하고 있던 자성미타(自性彌陀)를 깨닫고 큰 깨달음을 얻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도로아미타불"은 석두 행자의 오도송(悟道頌)일 수도 있고
잃었던 자기 자신의 불성을 되찾았다는 의미심장한 뜻이 담긴 말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던, "지장보살"을 부르던,"나무아미타불"을 부르던
내 몸과 마음을 다해서 부르다 보면 저 석두행자처럼 내 자신 속에 숨겨져 있던
부처님을 뵈올 수 있겠지요?
김영만님의 댓글
김영만 작성일
빨리 성불하고자 하거든 염불하라 - 각성스님(펌)
불교를 수행하는 데 가장 기본은 계·정·혜(戒定慧) 3학(三學)입니다. 법을 배우는 데는 법학이 필요하고 경제를 배우는 데는 경제학이 필요하듯, 불교를 배우는 데는 계학, 정학, 혜학 3학이 필요합니다.
우선 계(戒)라고 하는 것은 무궁무진한 진리를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일상생활의 모든 규칙, 규범, 예의범절, 인간사, 법률, 윤리, 도덕 할 것 없이 모두 계의 성질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화엄경에서 “계의 성질이 허공과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무슨 뜻인고 하면, 팔만사천 법문이나 한량없는 법문이나 인간만사 모든 것이 다 계의 성질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의 성질이 허공과 같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깊은 뜻은 계를 잘 지키려면 마음이 허공과 같이 텅 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를 잘 지키려면 마음이 지극히 청정하고 마음이 허공과 같이 비워질 때 계를 제대로 잘 지킨다는 것입니다.
정(定)이란 마음이 안정된 것이죠. 마음이 지극히 비워지고 맑은 물처럼 고요하고 안정될 때 정이라고 합니다. 계를 잘 지키고 마음공부를 잘 해서 마음이 지극히 편안하고 고요할 때 정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3학의 두 번째 정학입니다.
혜(慧)는 마음이 청정해서 계를 잘 지키고, 마음공부를 해서 마음이 비고 고요하고 안정될 때 밝은 지혜가 나타납니다. 맑은 물에 달이 비치는 현상과 같습니다. 밝은 달보다 더 밝은 것이 바로 마음의 지혜입니다. 부처님은 마음의 지혜를 최고의 극치에 달하도록 마음을 밝히고 깨달아서 성불했기 때문에 부처님의 온 전신에서 광명을 놓을 수 있습니다.
태양의 광명은 그림자가 보이지만 부처님의 몸에서 발하신 광명은 그림자가 없어 태양보다 훨씬 밝은 광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혜를 성취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반야입니다. 그 밝은 지혜는 시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 삼세를 꿰뚫어서 관찰할 수 있고 공간적으로는 시방세계를 다 알 수 있는, 시공을 초월한 그러한 마음에서 밝은 지혜가 나타나면 걸림 없이 밝은 지혜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불하면 결국에 계정혜 삼학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계정혜 삼학을 갖기 위해서 노력하고 수행하고 정진하는 그러한 불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알뜰하고 착실하게 그대로 수행을 해야 되겠지요.
【 말세 중생에게는 염불수행이 제일 】
그런데 수행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그야말로 팔만사천 한량없는 법문이 있는데, 그 많은 법을 우리가 어떻게 다 수행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문제이지요. 그래서 팔만사천 한량없는 법문 중 가장 중요한 법을 선택한 것으로 참선이나 염불, 관법, 기도 등 여러 가지 방법이 나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말세 중생에게 제일 쉽고 빠른 수행법이 염불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마음공부를 하는 그 자체가 결국은 성불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성불하기 위해서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부처님을 사모하고, 부처님을 숭배하고, 부처님을 존경하면서 부처님을 항상 생각하는 그 법을 염불수행이라고 합니다.
특히 사바세계 오탁악세에 태어난 우리 말세 중생은 여러 가지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장애가 많죠. 먹고 사는 데도 장애가 있고, 모든 일을 하는 데도 장애가 있고, 마음공부를 하는 데도 과정이 많잖아요? 그러한 사람에게는 일심으로 계정혜 삼학을 당면 목표로 염불수행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천수경에 보면 ‘원아속승반야선(願我速乘般若船): 원컨대 반야의 배를 어서 속히 타게 해주십시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이나 불보살께서 이미 만들어놓은 반야선에 올라타면 됩니다. 우리가 언제 비행기를 만들고 비행기 운전하는 기술을 배워 먼 나라에 갑니까.
여권이나 비자, 돈을 준비해가지고 비행기를 타면 자기가 가고자 하는 수만 리 떨어진 곳에 갈 수가 있어요. 그와 같이 아미타불 원력의 반야선을 타고 가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용수보살은 염불은 하기 쉬운 이행문(易行門)이라고 했고, 참선은 하기 어려운 난행문(難行門)이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염불 수행을 하는 데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믿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극락을 믿지 않으면 그곳에 갈 수도 없고, 부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부정해 버리면 성불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바른 믿음[正信]을 가져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극락에 가겠다는 발원을 해야 해요. 가까운 곳도 내가 가고자 하는 마음을 내야 갈 수 있는 것처럼, 극락에 가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등 여러 불보살들을 만나서 불법을 수행해야겠다는 그러한 마음을 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염불수행을 해야 합니다. 극락에 대한 그 설법을 믿고, 또한 극락에 가서 빨리 성불하고자 하는 발원을 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염불 수행을 해야 합니다.
먼 나라에 갈 때 돈도 필요하고 여권도 필요하고 비자도 필요한 것처럼, 신·원·행(信願行) 이 세 가지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만 갖추면 누구든지 다 성불한다는 거죠. 그와 같이 극락 발원을 하고, 염불수행을 해서 극락세계에 가야 성불이 빠르고, 거기 가면 왕생성불이라 모두가 다 부처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염불법이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 자나 깨나 일심으로 염불하라 】
사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희고 밝은 것이기에 염불도 필요 없고, 참선도 필요 없고, 마음공부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잖아요. 쓸데없는 잡념, 번뇌, 망상, 좋지 못한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일으키고 그러지요. 그러니까 마음공부를 절실히 해야 해요.
생각을 완전히 비우기는 어렵지만 생각을 좋은 쪽으로 돌이켜 염불로 정화시키기는 어렵지 않아요. 염불을 하면 업장도 소멸되고 질병이나 고통에서 다 벗어나게 됩니다. 염불에만 마음을 두면 정신이 집중됩니다. 정신이 집중되면 정신통일이 됩니다. 정신이 통일이 되면 참선해서 깨우치는 것과 같은 겁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염불수행이 어째서 좋으냐 하면 참선은 자기 힘으로만 하는데, 염불수행은 자력도 필요하지만 타력이 더 많이 증가되는 겁니다. 항상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리운 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일편단심으로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생각하며 부르면 되는 거지요. 그리하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등 불보살의 법력이나 원력, 위신력의 힘에 업히는 겁니다.
극락이라고 하는 것은 성불하기 위한 임시대기소입니다. 극락보다 더 최고가 열반적멸(涅槃寂滅)이죠. 번뇌망상이 고요해서 다 사라진 그 자리를 적멸이라고 해요. 나고 죽는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이 적멸락(寂滅樂)입니다.
극락세계는 성불하신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같은 분이 계시면서 성불 못한 중생들을 임시수용을 해서 성불시키는 교육도량입니다. 염불을 일심으로 하세요. 딴 생각하지 말고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고통스러울 때나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죽기 전에도 염불하고, 죽을 때도 염불만 해야 해요. 사람이 숨 떨어질 때가 가장 중요한 거예요. 숨 떨어질 때가 가장 고통이 심하죠. 과거에 지은 업이 일시에 다 나타나는 겁니다. 마음공부 하지 않은 사람은 그때 당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평소에 마음공부를 많이 하고, 염불수행을 많이 한 사람은 숨 떨어질 때도 미리 알고 염불수행을 지극히 잘하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같은 불보살 들이 나와서 영접을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하기에 평상시에 훈련이 되어야 해요. 평상시 훈련을 쌓아야 죽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놀라지 않고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염불만 하여 100% 극락왕생해서 성불하는 겁니다.
______________________
각성 스님 _ 부산 화엄사 회주. 1955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도원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관응·탄허·관응 스님 등 당대의 대강백들로부터 수학하고, 통도사를 비롯해 범어사, 해인사, 백양사, 은해사 강원의 강주를 역임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으로 있으며, 부산과 서울을 오가면서 강의와 경전 번역을 통해 불자들에게 법을 전하고 있다.
ⓒ 월간불광
김영만님의 댓글
김영만 작성일
염불하는 열 가지 마음(念佛十種心) - (펌)
1.무손해심(無損害心)
염불할 때 염불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대자(大慈)한 마음을
항상 일으키어 손해(損害)를 더하지 않고 쾌락을 준다는 마음을
일으켜 염불하므로 ‘무손해심’이라 한다.
2.무핍뇌심(無逼惱心)
염불하는 사람은 신심이 안정되어 모든 중생에 있어 대비(大悲)한
마음을 항상 일으키어 번뇌하고 앓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고통에서
해탈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염불하므로 ‘무핍뇌심’이라 한다.
3.낙수호심(樂守護心)
염불하는 사람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정법을
마땅히 신명을 아끼지 않고 수호하며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항상 가지므로 ‘낙수호심’이라 한다.
4.무집착심(無執着心)
염불하는 사람은 항상 지혜로써 모든 일체의 법을 관찰하며,
한 가지 사물에 고집하여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냄으로써
‘무집착심’이라 한다.
5.기정의심(起淨意心)
염불하는 사람은 능히 세간(世間)에 섞인 물든 법을 떠나서
다시 이양(利養)등의 일을 떠나 항상 스스로 만족함을 알아
청정한 마음을 일으키므로 ‘기정의심’이라 한다.
6.무망실심(無亡失心)
염불하는 사람은 정토(淨土)에 태어나길 구하며 부처님의
갖가지 지혜를 이룸에 있어 일체시(一切時) 일체처(一切處)에
처하여 생각 생각마다 정토와 불종지(佛種智)를 놓치지 않음으로
‘무망실심’이라 한다.
7.무하열심(無下劣心)
염불하는 사람은 항상 평등한 마음으로 행동하며 모든 중생을
존중하고 공경하며, 경만(輕慢)한 마음을 내지 않으므로
‘무하열심’이라 한다.
8.생결정심(生決定心)
염불하는 사람은 세간의 언론에 집착하지 않고 위없는
지혜의 길 (無上菩提之心)을 깊이 바르게 믿어
마침내 혹(惑)됨이 없는 안정된 마음을 내므로
‘생결정심’이라 한다.
9.무잡염심(無雜染心)
염불하는 사람은 닦고(修) 익히며(習) 공덕을 행하고
갖가지의 모든 선근(善根)의 마음을 항상 일으키며
일체 번뇌(煩惱)와 잡염(雜染)을 떠나게 하므로
‘무잡염심’이라 한다.
10.기수념심(起隨念心)
염불을 열심히 한 공덕으로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보았다 할지라도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무념(無念)한 가운데 항상 부처님을 염(念)하므로
‘기수념심’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