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선사 일화 속 사상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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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만 작성일12-09-28 08:42 조회3,439회 댓글1건본문
痲醉하지 않은 채 받은 手術(마취하지 않은 채 수술)- 16
선생이 만주 땅 간도(間島)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떤 고개를 넘다가 두서너 괴한(怪漢)들이 쏜 총탄을 목에 맞고 쓰러졌다.
피가 심하게 흘러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환상으로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다.
하얀 옷을 입고 꽃을 든 아름답기 그지없는 미인의 모습인데, 미소를 던지면서 그 꽃을 선생에게 주면서 "생명이 경각에 있는데 어찌 이대로 가만히 있느냐"고하였다.
이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려 중국 사람의 마을을 찾아가서 우선 응급치료를 받고 곧 한국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이때 의사는 큰 상처여서 매우 아플테니 마취를 하고 수술하자고 했으나 선생이 굳이 마다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마취를 하지 않았다.
생뼈를 깎아내는 소리가 빠각빠각 날 뿐 아니라 몹시 아플텐데도 까딱 않고 수술이 끝날 때까지 견뎌냈다.
의사는 "그는 인간이 아니고 활불(活佛)이다"고 감탄하며 치료비도 받지 않았다 한다.
비녀가 소용없다 - 17
선생은 1912년을 전후하여 장단(長湍)의 화장사(華藏寺)에서 〈여자단발론 女子斷髮論〉을 썼다.
당시 남자들에 대한 〈단발론〉이 사회적 물의를 크게 자아내고 있을 때 감히 여자의 단발을 부르짖은 것은 선생의 선각적인 일면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아깝게도 이 원고는 지금 전하지 않아 그 자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그 무렵 선생은
"앞으로 20년쯤 후가 되면 비녀가 소용없게 된다."고 예측하였으며 좋은 금비녀를 꽂고 있는 부인을 보면, "앞으로 저런 것은 소용없게 될텐데......"하였다는 것이다.
죽기 참 힘든 게로군 - 18
선생은 3·1운동의 준비 공작을 서두르는 동안 여러 인사를 만났다.
박영효(朴泳孝), 한규설(韓圭卨), 윤용구(尹用求)들을 차례로 접촉해 보았다.
그러나 대개는 회피하고 적극적인 언질을 피하였다.
서울의 소위 양반, 귀족들은 모두가 개인주의자요, 국가, 민족을 도외시한다고 한탄하며 죽기 참 힘든 게로군! 하고 말했다.
- 편집 보강(김영만) 전법위원-
출처: 만해기념관(http://www.manhae.or.kr/)
댓글목록
김영만님의 댓글
김영만 작성일
초인적 만해선사,
선각적 예지력의 만해선사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