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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선사 일화 속 사상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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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만 작성일12-10-10 08:10 조회3,34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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島山과 萬海(도산과 만해)- 31

 만해 선생이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과 나라의 장래를 의논한 일이 있다.

이때 도산은 우리가 독립을 하면, 나라의 정권은 서북(西北) 사람들이 맡아야 하며, 기호(畿湖) 사람들에게 맡길 수는 없다고 하였다.

만해 선생이 그 이유를 물으니, 도산 선생은 기호 사람들이 오백년 동안 정권을 잡고 일을 잘못했으니 그 죄가 크며, 서북 사람들은 오백년 동안 박대(薄待)를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다.

그후부터 만해 선생은 도산 선생과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城谷의 神童(성곡의 신동)- 32

선생은 어릴 적부터 남달리 기억력과 이해력이 뛰어나 가끔 어른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신동(神童)이라고 불렀으며, 선생의 집은 '신동집'으로 통했다 한다.

어느날 선생이 서당에서 《대학 大學》을 읽으면서 책의 군데군데 시커멓게 먹칠을 하고 있었다. 이상이 생각한 훈장(訓長)이 그 까닭을 물으니,

"정자(程子)의 주(註)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미 아홉 살 때에 《서전 書傳》을 읽고 기삼백주(朞三百註)를 자해(自解) 통달했다고 하는 천재였지만, 훈장은 또 한번 놀랐다.

神이여, 自由를 받아라(신이여, 자유를 받아라)- 33

종로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저명 인사들의 강연회를 열었을 때, 선생은 마지막으로 자유에 대하여 연설하였다.

"여러분, 만반진수(滿盤珍羞)를 잡수신 후에 비지찌개를 드시는 격으로 내 말을 들어 주십시오. ...... 아까 동대문 밖을 지날때 과수원을 보니 가지를 모두 가위로 잘라 놓았는데 아무리 무정물(無情物)이라도 대단히 보기 싫고 그 무엇이 그리웠습니다"하는 비유를 들어 부자유(不自由)의 뜻을 말하자, 청중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 부자유를 과수원의 가지 잘린 나뭇가지에 비유한 것은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자유를 빼앗긴 것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입회 형사는 그 뜻을 모르고 박수를 하는 청중들에게, 고작 과수원 전정(剪定) 이야기인데 박수를 하느냐고 청중의 한 사람에게 따졌다. 그랬더니 이 사람은 재치 있게도,

"낸들 알겠어요. 남들이 박수를 하니 나도 따라 쳤을 뿐이지요"라고 임기웅변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잠시 폭소가 터졌다고 한다. 선생은

"진정한 자유는 누구에게서 받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주는 것도 아닙니다. 서양의 모든 철학과 종교는 "신이여, 자유를 주소서"하고 자유를 구걸합니다. 그러나 자유를 가진 신은 존재하지도 않고 또 존재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이 부자유할 때 신도 부자유하고 신이 부자유할 때 사람도 부자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스스로가 자유를 지켜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이여, 자유를 받아라" 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고 열을 뿜었다.

"신이여, 자유를 받아라" 하는 이 말을 그때 참석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 편집 보강(김영만) 전법위원 -
출처: 만해기념관(
http://www.manha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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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영만님의 댓글

김영만 작성일

분별심을 여의신 만해선사
세세생생 맑은 습으로 살아오신
만해선사, 늘 달변 속 민족 해방을
강조하신 만해선사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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