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선사 일화 속 사상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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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만 작성일12-10-08 06:47 조회3,479회 댓글1건본문
마중받는 인간이 되라 - 28
선생이 3·1운동으로 3년간의 옥고(獄苦)를 치르고 출감하던 날, 많은 인사들이 마중을 나왔다.
이들 중 대부분은 독립 선언 서명을 거부한 사람이요, 또 서명을 하고도 일제의 총칼이 무서워 몸을 숨겼던 사람들이었다.
선생은 이들이 내미는 손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직 얼굴 들만을 뚫어지게 보다가 그들에게 침을 탁탁 뱉았다.
그리고는, "그대들은 남을 마중할 줄은 아는 모양인데 왜 남에게 마중을 받을 줄은 모르는 인간들인가."라고 꾸짖었다.
日本은 敗亡한다(일본은 패망한다)- 29
독립 선언 서명자들이 이 법정에서 차례로 신문(訊問)을 받을 때, 선생은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재판관이 "왜 말이 없는가? "라고 묻자, 다음과 같은 대답으로 재판관을 꾸짖었다.
"조선인이 조선 민족을 위하여 스스로 독립 운동을 하는 것은 백번 말해 마땅한 노릇. 그런데 감히 일본인이 무슨 재판이냐? "
신문이 계속 되자, 선생은 "할 말이 많으니 차라리 서면으로 하겠다."고 지필(紙筆)을 달래서 옥중에서 장문의 〈조선독립의 서 朝鮮獨立의 書〉를 썼다.
여기에서 선생은 조선 독립의 이유, 독립의 자신, 독립의 동기, 민족의 자유 등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고 총독 정치를 비판하였던 것이다.
결심공판(結審公判)이 끝나고 절차에 따라 최후 진술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선생은
"우리들은 우리의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정치란 것은 덕(德)에 있고 험(險)함에 있지 않다.
옛날 위(魏)나라의 무후(武侯)가 오기(吳起)란 명장(名將)과 함께 배를 타고 강을 내려오는 중에 부국(富國)과 강병(强兵)을 자랑하다가 좌우 산천을 돌아보면서 "아름답다 산하의 견고함이여, 위국(魏國)의 보배로다"하고 감탄하였다.
그러나 오기는 이 말을 듣고 "그대의 할 일은 덕에 있지, 산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덕을 닦지 않으면 이 배 안에 있는 사람 모두가 적이 되리다"고 한 말과 같이, 너희들도 강병만을 자랑하고 수덕(修德)을 정치의 요체(要諦)로 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고립하여 마침내는 패망할 것을 알려두노라."라고 말했다.
과연 선생의 말씀대로 일본은 패전의 고배를 마시고 쫓겨갔다.
그러나 이 사실을 예견했던 선생은 끝내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바로 그 전해에 별세하였다.
인도에도 金允植이 있었구나(인도에도 김윤식이 있었구나) - 30
3·1운동이 일어난 얼마 뒤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이 그전에 일제가 준 남작(男爵)의 작위를 반납한 일이 있다.
이것은 독립 운동의 여운이 감도는 당시에 취해진 민족적인 반성이었다.
이 일이 있은 몇달 뒤 인도(印度)에서는 우발적인 일치랄까,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촉이라고 노래한 바 있는 시인 타고르가 영국에서 받았던 작위를 반납하였다.
이것은 간디의 무저항주의적인 반영(反英) 운동의 자극을 받은 때문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선생은,
"인도에도 김윤식이 있었구나"하는 묘한 비판을 하였다.
- 편집 보강(김영만) 전법위원 -
출처: 만해기념관(http://www.manhae.or.kr/)
댓글목록
김영만님의 댓글
김영만 작성일
죽음 앞에서 의연하신 삶의 철학이
확고하신 만해선사, 중국 고사를 통한
후덕한 인간관을 말씀하신 만해선사,
김윤식 선생을 통한 만해선사의 청명한
대일 저항 사상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