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선사 일화 속 사상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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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만 작성일12-10-13 00:58 조회3,458회 댓글1건본문
昭和를 燒火하다(소화를 소화하다)- 37
선생이 신간회(新幹會) 경성지회장(京城支會長)으로 있을 때 공문을 전국에 돌려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인쇄해 온 봉투의 뒷면에는 일본 연호인 소화(昭和) 몇 년 몇 날이란 글자가 찍혀있었다.
이것을 본 선생은 아무 말 없이 천여장이나 되는 그 봉투들을 아궁이 속에 처넣어 태워버렸다.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선생은 가슴이 후련한 듯
"소화(昭和)를 소화(燒火)해 버리니 시원하군! " 하는 한마디를 던지고는 훌훌 사무실을 떠나버렸다.
어디 한번 더 해봐- 38
어느날 재동(齋洞)에 있는 이백강(李白岡) 선생 댁에서 조촐한 술좌석이 벌어졌다. 이 자리에는 김적음(金寂音) 스님을 비롯하여 몇몇 가까운 분이 동석하고 있었다. 술이 몇 차례 도니 만해 선생도 모처럼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그런데 잔이 거듭 오고가던 중 김적음 스님이
"여러분 감빠이(乾盃) 합시다." 라고 말하였다. 선생은 노발하여
"적음, 그 말이 무슨 말인가? 무엇을 하자고? 어디 한번 더 해봐."
하고 언성을 높였다. 적음 스님은 무색했다.
기자의 카메라를 내던지다- 39
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의 기자가 찾아와 선생에게 학병 출정을 독려(督勵)하는 글을 부탁하였다.
"그런 것 못 쓰겠네, 아니 안 쓰겠네."
"그럼 말씀만 해주십시오. 제가 받아 쓰겠습니다."
"안돼 그것도 안돼! " 선생의 음성은 다소 거칠어졌다.
"정 그러시다면 사인이라도 해주십시오. 원고는 신문사에서 적당히 쓰겠습니다."
다그친 독촉과 함께 기자는 카메라를 들었다. 사진까지 찍어다 내려는 심산이었다. 순간, 노한 선생은 기자 손에 들려 있던 카메라를 빼앗아 내던져 버렸다.
- 편집 보강(김영만) 전법위원 -
출처: 만해기념관(http://www.manhae.or.kr/)
댓글목록
김영만님의 댓글
김영만 작성일
철처하신 독립의식의 만해선사,
언어적 표현도 민족 의식으로 철저하신 만해선사
불같은 성격으로 불의를 용납하지 못하신 만해선사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