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선사 일화 속 사상 - 15 > 마음나누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모두가 함께 꿈을 이루어가는 청년 부처님의 세상
마음나누기

마음나누기

만해선사 일화 속 사상 - 15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영만 작성일12-10-16 07:39 조회3,674회 댓글1건

본문

154060475069321B0E3225

放 聲 大 哭(방성대곡)- 46

 중국에서 독립 운동을 하다가 왜적에 검거되어 그후 마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애국지사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 선생이 별세하고 말았다.

만해 선생은 자진하여 유해를 인수해서 심우장의 자기 방에다 모셔다 놓고 오일장을 지냈다.

장례 때에는 사상가를 중심으로 한 많은 명사가 조의를 표하기 위하여 왔으나 꼭 오리라고 믿었던 모모 인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누가 그 까닭을 물으니 선생은 "그 삶들이 사람 볼 줄 아는가! "라고 말했다.

그런데 홍제동 화장터는 일본인 경영이므로 미아리의 조그만 한국인 경영의 화장터에서 장례를 치렀다. 영결식에서 선생은 방성대곡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우리 민족 지도자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위인인 일송 선생의 영결은 민족의 대불행이라, 2천2백만 겨레를 잃는 것처럼 애석한 일이다.

국내 해외를 통하여 이런 인물이 없다. 유사지추(有事之秋:독립의 뜻)를 당하여 나라를 수습할 인물이 다시 없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니 비통하다."

여기서 말하는 '유사지추'란 말할 것도 없이 독립을 말하는 것이며, 선생은 독립 후 건국의 대업을 생각하고 더욱 일송의 죽음을 애통해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선생이 우는 것을 그때 꼭 한번 보았다고 한다.

- 편집 보강(김영만) 전법위원 -

출처: 만해기념관(
http://www.manhae.or.kr/)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김영만님의 댓글

김영만 작성일

가장 인간적 삶 속에서 민족 선구자의 길을
보이신 만해선사님 _()_


(03144) 서울특별시 우정국로 67 전법회관 401호 대한불교청년회T. 02)738-1920F. 02)735-2707E-mail. kyba1920@hanmail.net

COPYRIGHT ⓒ 2017 (사)대한불교청년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