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선사 일화 속 사상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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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만 작성일12-10-18 06:57 조회3,413회 댓글1건본문
春園과 萬海(춘원과 만해)- 50
춘원 이광수는 불교 소설을 쓰거나 소설에 불교에 관한 것을 인용할 때에는 곧잘 선생을 찾곤했다. 그리하여 그 교리(敎理)의 옳고 그름을 물었다.
이같이 선생은 춘원과 서로 문학을 논하며 정신적인 교류를 해왔다.
춘원은 창씨개명을 한 뒤의 어느날 심우장으로 선생을 방문했다. 집 뜰에 들어서는 춘원을 본 선생은 춘원이 이미 창씨개명한 것을 알고 있던 바라, 찾아온 인사도 하기 전에 그를 내다보고 노발대발하여
"네 이놈, 보기 싫다. 다시는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말아라." 하고 큰 소리로 꾸짖었다.
춘원은 청천벽력 같은 이 말에 집에 들어가기는커녕 변명할 여지도 없어 무색한 낯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쌓아둔 것을 보았겠지- 51
선생은 웅변이면서도 좀처럼 농담을 하거나 익살을 부리지 않고 침묵을 지키었다. 그러나 그 방(棒)은 유명하며 누구보다도 무게 있었다.
어느날 장사동(長沙洞)에 사는 설태희(薛泰熙) 옹 댁에 명사들이 모였었다.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고하(古下) 송진우(宋鎭禹) 선생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다 보았다고 호언장담하자, 옆에 있던 선생은
"고하가 보았다는 말은 쌓아둔 것을 보았다는 말이겠지. 라고 넌지시 말했다.
이때 한자리에 있던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는 폭소를 터뜨렸다.
산 송장을 죽여서 무엇 해!- 52
1940년 무렵 총독부에서는 최악의 수탈(收奪) 정책을 강행할 뿐 아니라 한글 폐지, 창씨 개명, 징병 등을 강행하여 우리 민족을 일본화시키려고 하였다.
이 무렵 공주 마곡사(麻谷寺) 주지 송만공 선사는 31본산 주지 회의의 기회를 틈타 총독을 자살(刺殺)할 계획으로 몰래 칼을 품고 다녔다.
하루는 만공이 심우장으로 선생을 찾아와 칼을 내보이며 총독을 기어코 찔러 죽이고 말겠다고 호언하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선생은 만류했다.
"죽어 가는 산 송장을 죽여서 무엇 합니까. 더러운 업보(業報)만 쌓게 되니 그만 두시오.\" 하고 칼을 빼앗았다. 만공이 의아해서 물었다.
"아니 죽어 가는 산 송장이라니? "
"이제 그놈들도 끝장이야. 얼마 안 가서 연합군에 항복하고 말 거요. 그때 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형을 받을 것이니 이제 죽을 날 받아 놓은 것과 매 한가지야."
선생의 확신에 찬 충고를 듣고 만공 선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 뒤 만공 선사는 서산(瑞山) 간월도(看月島)에서 조선이 독립하게 해달라는 천일기도(千日祈禱)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우연이라기에는 너무나 감동적인 기적이 일어났다. 만공이 천일기도를 마치고 나온 날이 바로 1945년 8월 15일이었으니 말이다.
이 사실을 알고 당시의 고사(高士)였던 산강재(山康齋) 변영만(卞榮晩) 선생이 만공 선사에게 달려가 스스로 제자계(弟子戒)를 받고 삼청(三淸)이라는 법호를 얻었다 한다.
- 편집 보강(김영만) 전법위원 -
출처: 만해기념관(http://www.manhae.or.kr/)
댓글목록
김영만님의 댓글
김영만 작성일
어느 누구라도 민족을 배신한 행위를 용서하지 않았던 만해선사,
묵묵한 침묵으로 만해선사의 "방(棒)"을 보이신 만해선사,
오랜 수행과 민족 운동으로 앞날을 예견하신 만해선사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