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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선사 일화 속 사상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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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만 작성일12-10-20 01:35 조회3,50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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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없는 일생- 56

일본이 통치하는 동안 그들은 처음엔 민적(民籍), 그 후엔 호적법(戶籍法)을 실시했다.

선생은 처음부터 "나는 조선 사람이다. 왜놈이 통치하는 호적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없다."고 하며, 시집 《님의 침묵》에도 '나는 민적이 없어요'라는 구절이 있듯이 평생을 호적 없이 지냈다.

그래서 선생이 받는 곤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신변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모든 배급 제도(쌀 고무신 등)에서도 제외되었다.

그보다도 큰 문제는 선생이 귀여워하던 외딸 영숙이가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점이었다. 아버지가 호적이 없으니 자식 또한 호적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선생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일본놈의 백성이 되기는 죽어도 싫다. 왜놈의 학교에도 절대 보내지 않겠다."하고는 집에서 손수 어린 딸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日帝는 敗亡한다(일제는 패망한다)- 57

"일제의 야망은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장차 중국 대륙에까지 침략의 손길을 뻗칠 것이다. 그러나 필경 연합군에 항복하고 말 것이다."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온 선생은 주위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설파하였다.

과연 이 예측대로 일제는 몇 년 뒤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키고 중국 대륙으로 침략해 들어갔으나 결국은 연합군에 의하여 망하고 말았다.

역사를 통찰하는 혜안(慧眼)이 아니고서는 감히 그때 이런 예측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깔(法帽)를 쓰지 말라- 58

선생은 일본 법관(法官) 밑에서 변호사 노릇을 하는 것까지도 불쾌하게 여겼다.

낭산(朗山) 김준연(金俊淵)이 변호사 자격이 있음에도 그것을 단념한 것을 보고 높이 평가했다.

"남들은 왜놈 고깔(法帽)를 쓰고 그 밑에서 돈을 벌지만 낭산은 돈이 없으면서도 그 따위 고깔은 쓰지 않으니 신통하군! "


- 편집 보강(김영만) 전법위원 -

출처: 만해기념관(
http://www.manha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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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영만님의 댓글

김영만 작성일

고통에서 굴하지 않는 반일정신의 만해선사,
오랜 수행정진 속 역사적 해안을 지니신 만해선사,
한점의 허점을 보이지 않으신 반일정신의 만해선사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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