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유태인이 아닌 샤카족이라면 어떻게 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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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본찰 작성일10-01-18 17:55 조회7,663회 댓글1건본문
예수님과 로마, 신라, 사카족과 친연성<?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민족의 분류는 혈연성 보다 정신문화의 공유체가 우선이다.
이데올로기로 민족이 갈라지고 하찮은 이데올로기로 동족이 살해되었다.
잘못된 정신은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고 부모가 자식을 살해한다.
유전자시대에는 혈연보다는 정신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개념이 우선한다.
예수님이 유태인이 아닌 샤카족이라면 어떻게 될것인가?
안티 기독교의 근본에는 항상 유태인이 있다
그 이유가" 예수의 무덤 심차 야코보비치.찰스 펠리그리노 지음"에서
본 것처럼 유전자 분석이 끝난 것과 아무런 관련 없는 것인가!
유태인의 역사서에서 예수의 부친이 로마지배층이란 기록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의 모계는 유태인이며 부계는 로마인으로 샤카족과 연관이 될 수도있다.
예수께서는,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배격하고
유대인의 편협한 선민 사상도 부정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정을 믿었다.
유대교의 전통적 문화의 중심지 예루살렘에서 보면 변경지인 북쪽 갈릴레아를
거점으로 해서 도시와 마을을 순회하면서 동포에게 전했다.
그리스도는 나사렛의 예수로 다른 예수로 불리는 사람과 구별해야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유대인의 편협한 선민 사상도 부정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정"
을 말씀하신 하나님(Lord)은 어느분을 말씀하신 것인가?
사카족의 인간사(우주인 포함)과 유태인 연대기 비교
Atanatiya Sutta
Discourse on Atanatiya
"Homage to Angirasa (the Buddha Gotama), the son of the Sakyas, who is full of radiance, and who proclaimed the Dhamma that dispels all suffering. ............"
"Gotama (the Buddha) dear to gods and men, endowed with knowledge and virtue,[5] mighty and fearless, all do homage to him (homage be to him). "
"....능인한 자, 고타마의 피를 이어받은 33대 자손 고타마 자야세나는
처음으로 사천하를 통일하고 전륜성왕이 되었으며 그 후, 이백삼십일만오십오 대(代)를
대대로 내려가 그의 후손 오카카 Okkaka甘茶王에 이르렀다."
우주인 들을 제약한 기록을 갖고 있는 민족은 사카족이 유일하다.
만일 당신이 우주인의 역사를 안다면 당신의 족보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환국의 역사를 사카족 역사에 포함할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사카족이 위치한 히말리야 산맥 지역과 갠지스강 지류인 간다쿠 강, 그리고 강가라 북쪽에
산재해 있었는데 주요한 종족으로 비데하, 라차비, 코리아, 사카, 앙가, 카시족 ,모리야 등이 있었습니다. 사카족과 경계한 콜리아족도, 비데하 국의 라차비족, 밧지족, 말라족, 모리야족도 모두 그 조祖가 사카족과 동일한 오카카 왕입니다.
비데아라는 말은 산지종족山地種族이란 뜻으로 산지는 곧 히말라야 산록을 말하고
이는 곧 몽골계의 종족을 뜻합니다. 따라서 라차비족도 몽골계이고 조가 같은 콜리아족도,
사카족도 다 몽골계가 되는 것입니다.
우주인을 제약한 기록을 갖고 있는 민족은 사카족이 유일하다.
고려 대장경에 파충류 외계인이 인간을 식사대용을 하는 것을 방지하였다.
사카세존이 이세계에 오시기 전에 이 지상을 관여하는 우주의 존재 들을 조복 시켰다.
예수의 무덤 심차 야코보비치.찰스 펠리그리노 지음
"이 남자와 이 여자는 한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모자 관계일 수도 없습니다. 모계 쪽으로는 남매일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 샘플들이 한 무덤에서 나왔다면, 그 무덤이 가족의 무덤
이라 가정한다면, 두 사람은 아무런 관계도 없기 때문에 부부였을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다빈치 코드' 보다 충격적인 유골
1980년 이스라엘 고고학국 고고학자들은 예루살렘 외곽 탈피오트의
아파트단지 건설 현장에서 1세기경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만 유행
했던 유골함 무덤을 발굴했다. 유골함 무덤은 동굴 외실에 1년간 시신
을 보관해 살이 다 썪으면 그 뼈를 수거해 석회암 뼈단지에 담아 내실
의 벽감에 보존하는 무덤 양식이다.
'탈피오트 열 무덤'으로 불린 이 무덤에선 모두 10개의 유골함이 발굴
됐다. 1개는 발굴조사 도중 사라졌다. 남은 9개 중 6개의 유골함에서
이름이 확인됐다. '요셉의 아들 예수' '마리아' '마테' '요세' '마리암네'
그리고 '예수의 아들 유다'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부모 이름이
고 마테와 요세는 신약성서에 기록된 에수의 형제들 이름과 일치한다.
기독교 신자라면 흥분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발굴조사가
들은 유대인이었다. 1세기경 마리아와 요셉 예수란 이름은 너무 흔했
고 예수의 아들은 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폭발력이 컸다. 이 때문에
이 무덤의 존재는 수십 명의 관계자에게만 알려진 채 다시 묻혔다.
이 무덤의 존재가 다시 부각된 것은 2007년이었다. 영화 '타이타닉'
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제작하고 유대계 캐나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심차 야코보비치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예수의 잃어버린 무덤'이 반영
되면서였다. 이책은 그 다큐멘터리에 다 담지 못한 제작과정의 뒷이야
기도 자세히 담았다.
출발점은 2002년 '존재가 드러난 '요셉의 아들. 에수의 동생 야고보'
라고 적힌 유골함이었다. 야고보는 예수의 또 다른 형제 이름이다.
이 유골함의 존재들 다큐멘터리로 제작햇던 야코보비치는 이유골함이
탈피오토 열 무덤에서 사라진 유골함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실제 이
유골함의 크기는 1980년 기록으로만 남은 유골함의 크기와 거의 같
았다. 이 유골함의 녹청 성분분석 결과도 다른 9개 유골함의 녹청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탈피오토 열무덤이 에수의 가족무덤일 통게적 확율은
매우 높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전체 여성의 25%가 마리아였고 남자
중 요셉은 14%, 유다는 10% 야고보는 2%에 해당했다. 그러나 이 이
름들이 한 가족으로 묶일 확률은 25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여기에 마
리암네가 막달라 마리아의 본명이라는 '빌립행전'의 5세기 필사본 기
록이 더해지면 그 파급력은 상상력의 산물인 소설 '다빈치 코드'를
능가한다.
앞에 인용한 글은 '예수'와 '마리암네'라고 적힌 유골함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한 전문가가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채 한 말이다. 이에 따
르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했고 그 사이에서 '다빈치 코드'가
주장한 딸이 아니라 아들이 태어났으며 유럽이 아니라 에루살렘에서
숨을 거둿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에 기독계의 통념을 뒤집는 내용이라 거센 반발을 불렀다. 눈 뜬
장님 신세가 된 이스라엘 고고학계도 쌍지팡이를 들고 반박에 나섰다.
그러나 그 반박 논리는 이책의 과학적 분석을 압도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통계가 진실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캐머런 감독이 서문에
쓴 글처럼 조사는 이제 겨우 시작됐을 뿐이다. 섣부른 예단은 삼가고
오로지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인용자료)
이스라엘인종의 기원과 몽골인의 캐릭터
Researches Into The Ethnic Origins Of Israel by C. F. Parker, B.A., page 37:
“It must be confessed that they (the Hittites) were not a handsome people. They were short and thick of limb, and the front part of their faces was pushed forward in a curious and somewhat repulsive way.
The forehead retreated, the cheekbones were high, the nostrils were large, the upper lip protrusive. They had, in fact, according to the craniologists, the characteristics of a Mongolian race.
Like the Mongols, moreover, their skins were yellow and their eyes black. They arranged the hair in the form of a ‘pigtail’, which characterizes them on their own and the Egyptian monuments quite as much as their snowshoes with upturned toes.
In Syria they doubtless mixed with the Semitic race, and the further south they advanced the more likely they were to become absorbed into the native population.
The Hittites of Southern Judah have Semitic names and probably spoke a Semitic language. Kedesh continued to bear to the last its Semitic title, and among the Hittite names which occur further north there are several which display a Semitic stamp.” (If one could observe one of Esau’s wives today, she probably would look somewhat like an Albanian Turk.)
이스라엘인종의 기원를 추적했던 성경고고학자 파커는 그의 글에서
이집트와 히타이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몽골인의 캐릭터에 무척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난다. BC 2천년경이다. ..(인용자료)
그리스 로마 이스라엘 이집트와 사카족 추정
초기 로마의 초기는 도시국형태였었다.
또한 신라와도 상당한 연관성 있는 것으로 알려졋었다.
댓글목록
배영진님의 댓글
배영진 작성일다들 자기 지역 주의적 발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니...믿을 바는 못되는 것이고, 그저 해탈로서 깨달음에 이르러서야 자기 성찰을 통한 참된 우주 진리를 보리라...모엇을 믿고 무엇을 따르리...오로지 장경속에 길이 있고, 그 길을 싱행하는 것 만이 우주의 평화와 진리를 흐르게 할 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