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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교회를 버리고....우리가 미쳐 돌아가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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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배영진 작성일10-03-30 12:36 조회5,930회 댓글3건

본문

 텅빈 호주교회 가득 채우는 한인 동포들

[해외리포트] "영어는 그만, 이젠 한국어로만 예배 본다" (펌)

10.03.30 10:24 ㅣ최종 업데이트 10.03.30 10:24 윤여문 (sydyoon)

호주 교회

▲ 지난 21일 데니스톤 이스트 유나이팅 처치에서 고별 예배가 열리고 있다.

"시드니 북부지역의 한 교회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야하는 압박을 받는 가운데, 향후 예배는 한국어로만 진행된다."  

  57년 된 교회, 신자 없어서 문 닫다

9시쯤에 데니스톤이스트교회 고별예배가 진행됐다. 예배 분위기는 더할 수 없이 무거웠고 몇몇 노인 신자들은 간간히 눈물을 내비치기도 했다. 교회 창립 이후 57년 동안 주일예배에 참석해 온 신자 4명도 고별예배에 참석했다.

  <데일리텔레그래프>가 크게 보도한 탓일까. 평소 열 명 정도 모이던 예배당에 갑자기 300명 이상의 신자들이 몰려들어 결국 야외천막까지 임시로 준비하는 법석을 떨어야했다. 고별예배답게 57년의 교회 발자취를 회고하는 내용으로 예배순서가 이어졌다.

레스 피어슨 담임목사는 "사과 과수원에 세워진 교회였지만 한때 주일학교 학생들만 300명이 넘을 정도로 크게 부흥했었다"고 회고한 다음 "신자가 없어 영어 예배를 중단하지만, 주심장로교회의 한국어 예배가 성공하기를 바란다"며 마지막 설교를 갈무리했다.

그런 다음 노회 담당자가 나와서 "오늘 예배를 끝으로 데니스톤이스트교회의 문을 닫는다"고 선언했다. 일부 교인들이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마지막 순서로 주심장로교회 한인성가대가 나와서 찬송 두 곡을 불렀다. 호주 교인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 교회 건물 앞에 있는 매각 광고판

ⓒ 윤여문 호주교회

  음식점과 술집으로 바뀌는 교회 건물들

  호주 교회의 쇠퇴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0년대 이후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해서 2000년 이후부터 바닥을 치는 형국이다. 3월 21일 폐쇄된 데니스톤이스트교회의 '흥망성쇠'도 그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백인 정착 역사가 220년밖에 되지 않는 시드니 거리를 걷다보면 마치 유럽의 도시와 흡사한 고풍스런 분위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누런 빛깔의 샌드스톤(砂巖)으로 지어진 석조건물 때문이다. 특히 관공서 건물과 교회 건물이 주로 그렇다.

그런데 매각 광고를 내붙인 교회 건물이 많고, 교회가 상인들에게 팔린 다음 음식점이나 술집으로 바뀐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009년에는 "교회 건물이 팔려서 도박장으로 용도변경 됐다"는 뉴스가 보도되어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와는 반대로 한인 교회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중이다. 시드니에만 대략 200개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뿐이 아니다. 90% 이상 노인 신자들로 채워진 호주 교회와는 달리 한인 교회는 어린이에서부터 노인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호주는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나라다. 고종황제 재위 당시였던 1889년, 호주 선교사가 맨 처음 조선으로 파송된 이후 1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상전벽해가 일어난 것이다. 호주의 한국 선교 역사를 간추리면 대략 이렇다. 

1889년 10월, 조셉 데이비스 호주 선교사가 한국에 파송되어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는 한국에 입국한 최초의 호주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한양에서 부산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도중에 병으로 사망해서, 조선 선교 183일 만에 부산에 묻힌 순교자로 기록됐다.

한편 기자가 인터뷰하여 <신동아> 2005년 12월호에 '지한파 한국인'으로 보도한 존 브라운 목사는 "데이비스 선교사 이후 200명 정도의 개신교 선교사, 가톨릭 신부, 수녀들이 한국에 파송되어 교회 개척, 학교설립, 병원설립 등의 선교 활동을 했고 지금도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12년간 한국에 머물렀던 브라운 목사는 한국장로교신학대 교수를 역임하고, 호주 최초의 한국인 교회를 시드니에 개척하기도 했다. 그는 <신동아> 인터뷰를 갈무리 하면서 "시드니에만 수백 개의 한인교회가 설립되는 게 감개무량하지만 거기에 따른 부작용 또한 많아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조심스럽게 발언한 바 있다.

매주 예배 참석하는 호주 기독교인은 '7.5%'뿐

호주는 기독교 국가다. 연방의사당에서 하루의 회의를 시작하면서 모든 의원들이 기립하여 주기도문을 외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공식행사에서 기독교 의식을 포함시킨다.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매주 빠지지 않고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통계청(ABS)이 발표한 2006년 센서스에는 호주 인구의 63.9%가 기독교인으로 집계됐다. 2001년에는 69%였으니 5년 사이에 5% 정도가 줄어든 숫자다. 종파별로는 가톨릭 25.8%, 성공회(Anglican Church) 18.7%, 개신교 16.4%, 동방정교회 순이다.

그러나 매주 주일 미사나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는 전체 기독교인의 약 7.5%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숫자가 5년 전의 통계여서 지금은 5% 정도로 추정된다.

호주 성당이나 교회에 가보면 대부분 은퇴 직전의 노인들이 미사나 예배를 인도한다. 특히 가톨릭의 경우가 아주 심각한 상태여서 필리핀, 베트남, 인도, 한국 등에서 신부, 수녀 등을 데려오거나 호주 신학교 등에 유학시켜 사제를 양성하고 있다.

한인 교인들 '시드니 성시화 대회' 열어

지난 3월 13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시드니 성시화 대회(The Sydney Holy City Convention 2010)'가 열렸다. 이 대회는 시드니 성시화운동 본부와 경상남도 성시화운동 본부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 행사는 '자신이 사는 도시를 거룩하게 변화시켜 민족 복음화를 앞당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총체적 복음 운동'으로 알려졌다. CCC 총재 김준곤 목사가 종교개혁자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을 본받아서 시작한 운동으로, 현재 한국 40여개 도시와 미국, 일본, 호주 등에서 성시화 대회가 열린다.

첫날은 시드니 타운홀에서 찬양예배가 열렸고, 이튿날에는 시드니 중심가를 행진하면서 호주 현지인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주는 등의 행사를 벌였다. 한국 개신교가 호주 현지인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벌인 것. 그 행사의 반응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연극관람을 위해 시내에 들렸다가 우연히 전도지를 받았다는 에일리 맥그리거(41)는 "아시안 사람들이 행진을 하면서 구호를 외치고 전도지를 나누어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왜 한국 사람들이 시드니에서 이런 대규모 행진을 하는지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전단 받기를 거부하는 시민도 많았고.

마지막까지 남은 10여 명의 교인 중에서는 마가레트 호프먼과 제네트 다이브도 있다. 그들은 "끝까지 영어 예배를 지키고 싶었는데 아쉽다"면서 "호주 교회들이 계속해서 문을 닫는 상황에서 유독 한인 교회들이 계속 늘어나는 게 부럽다"고 말했다.

한인교회의 폭발적인 증가를 경이롭게 여기는 사람은 그들뿐이 아니다. 2005년 시드니 인종폭동을 현장취재 했던 제임스 보이스 <채널 10> 기자는 "나는 한국 글자를 모르지만 모양은 안다. 시드니 거리에 한국 글자 교회 간판이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96세 성가 반주자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 넘기는 듯"

그날 고별예배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노인이 있었다. 오르간으로 성가를 반주한 로드니 카(96). 그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성가 반주자"라고 말했다. 확인된 사항은 아니지만 호주 교계에서 그렇게 인정해준다는 것.

그는 1953년 데니스톤이스트가 문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57년 동안 계속해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주일학교 교사와 교회 재정담당도 오랫동안 맡았다. 금융회사 AMP에서 40년 동안 근무한 그는 25년 전에 아내와 사별하여 혼자 살고 있다. 다음은 로드니 카와의 일문일답.

- 이제 오르간을 연주할 교회가 없어졌는데.

"내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느낌이다. 57년 동안 내 인생의 심장 같았던 교회가 폐쇄되니 너무 처연하다. 성가를 반주하다가 주님 곁으로 가고 싶었는데..."(로드니 카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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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태훈님의 댓글

이태훈 작성일

조상 부모 부정하고 외래 잡신 섬기는 무뇌 동포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xyjgood님의 댓글

xyjgood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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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berry님의 댓글

mulberry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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