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양심을 걸고 생명파괴행위 반대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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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배영진 작성일10-05-31 17:25 조회4,423회 댓글0건본문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표적인 4대강사업 반대론자다. 그가 6.2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다시 한번 4대강사업의 부당성을 토로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3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나는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가?" 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무려 2백자 원고지 110여쪽에 달하는 장문의 글에서 그는 시종일관 '양심'에 대해 얘기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경제학자로서의 모든 양심을 걸고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지금 4대강사업을 둘러싼 국론분열의 양상은 심각한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며 "최악의 경우 정부와 반대진영 사이에서 힘의 대결이 빚어질 수 있고, 어쩌면 2008년의 촛불시위 때보다 한층 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의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4대강사업에 대해선 언제나 입을 닫고 있는 보수 언론"
우선 이준구 교수는 보수 언론에 대한 비판의 날부터 세웠다. 그는 "스스로 입에 재갈을 물렸는지 아니면 암묵적 담합이 있었는지 몰라도, 웬일인지 4대강사업에 대해서는 언제나 굳게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계적 정론지 뉴욕타임즈는 '보도하기에 적합한 모든 뉴스를 보도한다(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라는 모토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수 언론은 언제부터인가 '내가 원하는 뉴스만을 보도한다(Only the News That I Want to Print)'라는 모토를 채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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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자신이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4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우선 "4대강사업은 시대착오적인 '강 죽이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자연 그대로의 강을 살려 둔 채 부분적인 손질을 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댐 축조와 준설이라는 낡은 교리를 적용해 우리의 강들을 몽땅 죽이려 하고 있다"며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토목공사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생태계 교란은 위험한 불장난"이라고 했다. 그는 "4대강사업의 반(反)생태성은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수만, 수억 년을 평화스럽게 살아오던 뭇 생명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다"며 "한 인간으로서의 내 양심은 이 거대한 '죽음의 사업'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4대강사업을 두고 "정당한 절차가 무시된 반민주적 사업"이라고도 했다. 특히 보수언론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언론까지 적극적인 협조자로 전락해 버린 상황에서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견제할 방법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며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하려 하는 정부 때문에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4대강사업의 절차적 문제점도 지적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는 졸속사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4대강사업에 대한 정부의 홍보를 보면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며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대통령의 지시 하나로 인해 몇 달의 짧은 기간에 급조된 초대형 토목공사"라고 말했다.
경제학자답게 4대강사업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문제 의식도 드러냈다. 그는 "22조원에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과 관련된 비용을 더하고, 여기에 다시 매년 들어가는 유지, 보수비용까지 포함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간다"며 "엄밀하게 계산해 보면 그 사업에서 나오는 편익이 그 1/10에도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경제학자로서의 양심을 걸고 4대강사업이 경제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는 사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며 "정부가 좀 더 구체적인 수치로 나를 설득하지 못하는 한 나는 이 결론을 조금이라도 수정할 용의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한편 이준구 교수는 이번 글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4대강사업 반대론자들이) 실정을 몰라서 반대한다는, 정치적 목적에서 반대한다는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공격에 반박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이
나는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가?
1. 머리말
발행부수 많은 일간지만 읽고 지상파 방송만 보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스스로 입에 재갈을 물렸는지 아니면 암묵적 담합이 있었는지 몰라도, 웬일인지 4대강사업에 대해서는 언제나 굳게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정론지 뉴욕타임즈는 "보도하기에 적합한 모든 뉴스를 보도한다(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라는 모토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수 언론은 언제부터인가 "내가 원하는 뉴스만을 보도한다(Only the News That I Want to Print)"라는 모토를 채택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눈을 돌려 좀 더 균형 있는 보도에 접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들에 따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4대강사업에 반대를 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극소수의 정치적인 지식인, 종교인만이 반대를 하고 있을 뿐, 말 없는 다수는 4대강사업에 대해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정부가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대화를 제의해도 이들은 일방적으로 그 제의를 거부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지금 우리에게 이처럼 자기 마음대로 왜곡한 진실을 믿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언론에 세뇌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상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들은 대통령과 정부가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을 향해 날이 선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유가 무언지 궁금해 한다. 반대하는 소수의 지식인, 종교인을 그냥 무시해 버리면 될 텐데 구태여 그들에게 날을 세우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무슨 일이든 반대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그렇게 일일이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아마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아무리 진실을 가리려 해도 언제든 밝혀지게 마련이다. 보수 언론이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왜곡 보도를 한다 해도 그림 전체를 짜맞추면 진실이 반드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공격에 관한 기사를 보고 사람들은 반대하는 세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수 언론이 그것을 보도한 의도는 4대강사업을 띄워 주려는 데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과 관련된 진실을 만천하에 알린 셈이 된다.
보수 언론이 아무리 가리려 해도 가릴 수 없는 진실은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세력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숱한 문제들로 운동 집단이 형성되고 해체되었지만, 지금까지 4대강사업 반대 그룹처럼 규모가 큰 집단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목 타게 갈구하고 있던 시절에도 지금처럼 우리나라 4대 종교집단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어떤 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몇 천 명이나 되는 대학교수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낸 경우도 전혀 없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사상 초유의 대규모 사회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취미 삼아 한 번 모이자는 식으로 만들어진 집단이 결코 아니다. 우리 국토 전체의 안위가 달려 있는 심각한 문제를 팔짱만 끼고 바라볼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뭉쳐진 집단이다. 따라서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수는 없게끔 되어 있다. 이들에게 4대강사업을 계속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하는 한 반대 의사를 스스로 철회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이들이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홍보 부족으로 인해 실정을 잘 모르고 반대한다는 말로 받아치고 있다. 소통이 없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 문제라고 지적하는데, 듣지는 않고 내 말 더 들어보라고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목적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고 역공을 취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말은 단 한 마디도 들으려 하지 않는 독선과 아집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 이하 너무 장문이라 생략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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