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불청 임원모임 참가후기(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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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동수 작성일11-03-04 20:45 조회4,072회 댓글1건본문
안녕하십니까 화계사 불교 청년회 법륜 장동수라 합니다.
지난번 우연히 이상일 호법부단장님을 뵙게 되었는데 반갑게 인사하시며, 자그마한 활동이라도 하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자신도 앞가림 못하면서 스스로 점검하지 못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자칫 무모할 수도 있고,
또 학업에 메인 몸이라 전반적인 활동이 아무래도 제약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말만 무성하게 던지고 뒤로 빠지는 행위를 경계했었으나
글로서의 참여 또한 좋은 일이라 하시고 또 생각이 익는다는 것은 적지 않은 시간과 젊음이 빠진 뒤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우선 제가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여러 선지식들 앞에 감히 글을 올리자니 부끄러운 가운데
치기어린 글이니 나무라실 일 있으면 달게 받겠습니다.
불교는 날때부터 인연으로 제 삶에 전부였고, 지금 그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해서 오히려 제 속에서 불교라는 ‘이름’을 없애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뿌리깊다 생각합니다.
관심과 사랑이라 여겨주소서...
지난번 대불청 임원모임에 참가하신 분의 그날의 내용을 들어 보니 평소 생각하던 부분들과 합하여 몇마디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 익고 있었습니다.
마침 이상일선배님의 말씀을 핑계 삼아 평소의 소신을 올려봅니다.
크게 제 귀에 들어온 부분이 두가지로
하나는 개독교 세력에 대한 경계
또 하나는 청년층 불자 확대!!
개독교세력에 대한 경계
먼저 개독교 세력이 우리 불교에 미치는 악영양은 실로 막대합니다.
처음부터 저는 ‘빰한대 때려주는 자비’를 바랬으나 너무 미지근한 처사로 상대를 배려해 주지 않아 그들로 하여금 만행을 키우게 한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가족도 사회도 버린 부처님의 용감하고 과감한 종교가 어찌 ‘무모한 평화’만 주장하는 종교가 된건지...아마 조선시대 영향이 컸으리라...
아무튼 개독교...마땅히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에 앞서 개독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분명히 해야할듯합니다.
일제시대, 6.25 이후 우리나라는 급작스러운 변화에 아직까지 여파가 대단합니다.
그간의 성숙된 의식이 사라지고 현재 발전과 ‘한민족 자체의식적’ 검증 없는 개방 속에 우수한 이웃종교 기독교는 일부 개독교가 되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현재 기독교를 두분류로 나뉜다면 하나는
돈과 성과만을 우선시 하되 하느님, 예수님을 팔아 관계를 형성하는 로타리 클럽 같은 이익단체적 성향이고,
다른 하나는 21세기 건강해진 젊은 층들에게 조심스럽게 영성과 본질을 이야기 하는, 점차 불교와 같은 소리를 내고 있는 기독교 같습니다.(본인들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그 이익추구적 개독교는 사실 기독교의 탈을 쓴 이익단체로 요즈음 한창 불교와 기독교를 싸움을 붙이고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듯 보입니다.
(즉 ‘돈교’가 이이제이(以夷制夷) 하여 어부지리를 얻는 격이고 꾀 성과가 있어서 그들이 다루기 어려워 하던 종교의 위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개독교를 없애려면, 먼저 우리 불교내 ‘개불교’ 세력을 점검하고 물질적 감각적충동의 세상에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웃종교 기독교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른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이 땅에 자리 잡히길 도와주어야 합니다.
다행인 것이 우리나라에 선각자이신 다석유영모선생과 함석헌선생의 사상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로 되어 있습니다.
무분별한 종교의 시대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불교의 도움으로 우리나라 학문의 정종이시며 더 깊은 하나님을 이해하신 유영모선생과 함석헌 선생의 우리나라식 고등기독교가 자리 잡힌다면, 제대로 교육받은 현명한 이 시대 젊은이들은 큰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도마복음이나 제대로 된 기독교 연구 및 지원과 화합을 한다면 “싸우지 않고도 원하는걸 얻을 수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정의 없이 눈 가리고 귀 막는 종교에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리되면 개독교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즐겁지 않습니까?? 불교는 기독교와 힘을 합하여 물질적인 이 세상에 새로운 빛이 됨을...
‘청년불자확대!!’
-일단 현 우리 불교의 힘과 영향력과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쓰는 글임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인슈타인이 “미래의 종교는 불교일 것이다.” 라고 했던가요??
과학의 발전이후 오묘하게 불교의 가르침과 맞아떨어지는 세상에 불교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며, 과학적인 깊이가 있는 미래세계의 대안입니다.
많은 것을 가졌고 많이 넓혔음에도 부족하고 목마른 이 시대 젊은이들의 휴식처일 것입니다.
불교 층의 확대에 대한 많은 선지식의 이야기들이 있지만 제 개인적인 주관을 말하자면
스님(출가자)들의 확대보다 젊은 불교(재가자)인 인재육성이 필요합니다.
급변하는 세상입니다.
불교의 역사를 보면 변화에 변화를 겪습니다.
심지어는 부처님이 나신 곳에서 조차 불교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본질은 같을지 모르겠으나 겉모습은 나라별로 시대별로 그 모양을 달리했고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위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21세기 이땅의 불교는 어떤 모습을 해야할까요??
변하는 것 자체가 변하지 않는 것인데 너무 기존의 것들만 파고드는 부분은 없었는지??
이 시대 젊은이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불교에 관심을 갖는지 혹은 유혹 많은 이 세상에 불교는 어떠한 비젼을 제시하며 그들과의 소통을 하려는지??
또 소통을 하려고 준비는 되어 있는지??
자칫 고루해보이지는 않는지??시대에 뒤떨어지는 이미지는 아닌지??
태권도나 요가보다 못하지 않을 텐데 왜 그것들은 돈을 주고도 배우면서 불교는 기피하는지??
각설하고
사회에도 실질적인 이득이 되는
밖에서 보기에 재가신도(사회인)로서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현명하고 배려 깊으며, 앞선 의식을 가진 진취적 젊은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사실 절에 가면 출가하라고 스님들이 자꾸 괴롭혀서 가기 싫을 때도 많습니다.)
젊은 불자들은 승려가 아닙니다.
그들의 주된 포커스는 소위 ‘해탈’이 아니라 결국 불교를 공부하여 어디까지나 사회인으로서 보다 낳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재가신도에게 해탈을 이야기 한다면 웃긴 이야기 아닌가요??
실제로 많은 젊은 불자들이 하지 못한 입산수도(여러 스승들에게 은연중 주입되고 강요 받아진)에 대한 스트레스 및 깨달음에 대한 부담감으로 사회부적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사회와 불교자체의 괴리감을 낳는 것 같습니다.
물론 깊이 들어가면 그 끝은 깨달음이겠지만,
더 잘 아시다시피 사회생활, 회사생활, 결혼생활에 승려들도 못하는 해탈까지는 한계가 있고, 현생에서의 평안이 재가신도들에게 우선시되는 목적인 것입니다.
또 근기에 따라 출가 및 해탈은 필요이상의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는 사람들의 상황에 따라 차별 하여 보편적인 불교철학을 권유하되
실용적인 부분을 많이 접목시켜 불교를 공부한 젊은이들이 사회활동에서도
두드러지는 성과와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개인에게도 실질적 이득이 되는
호흡과 명상수련으로 정신적 힘과 영역을 넓힌, 검증된 불교적 사상의 진취적 젊은 리더가 이 나라에 두터워 진다면, 그 층이 두터워지면 승려의 지원자는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입니다.
젊은 재가신도층의 확대 = 승려수 증가
(만해스님의 불교유신론을 참조해서 생각한 말입니다.)
요즈음 선도에서는 일부 스승들은 산에서의 수도을 기피한답니다.
산에서 5년 수도하면 급변하는 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어쩔 수 없이 사회에 부적응하게 되는....
우리 불교도 승려층 보다는 불교를 공부한 젊은 리더를 키우는 것.
삶과 수행의 별개가 아니고, 수행과 활동의 이질성이 아닌 부분.
현대 젊은이들이 쉬어가는 삼림욕장으로서의 도심속의 사찰.
제가 말하고 싶은 또 하나의 부분인 참선과 명상의 프랜차이즈화입니다.
요가나 태권도처럼 현대인들의 곁에서 필요에 맞게 손쉽게 접할 수 있고 시대에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현대인들에게 바로 도움이 되는...
이렇게 불교와 문화의 접목이 이루어지고 참여인원이 많아지면 그때야 사찰로 더 심도 있게 공부를 하로 가거나
배움의 욕구가 깊어진 人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출가자의 수가 늘어나지 않을까요??
또 매년 기백명씩 쏟아져 나오는 불교계 보육원 어린친구들을 스님도 일반인도 아닌 주변인으로 키우기 보다
‘번개로 내려치는 듯한 강한 선택에 의한 중도’로서
불교적 성향과 의식을 가진 학자나 사회 전반적인 중요 인물로 신경써서 키운다면...
결과는 흥분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가 바라는 불교가 아니라 불교가 바라는 사회를 꿈꿔볼 수도 있지 않을런지...
돈 많고 소비 잘하는 사람이 이상이 아니라 사람냄새 나는 정신적 성숙됨을 우러러 보는 그런 사회.
불교 내실에서부터 사람을 키우며 다져나간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장의 가시적인 것을 바라지 않고
내실을 다지고 준비한다면 15~20년 후쯤은 우리나라는 자연스럽게 불국토가 될 것입니다.
이런, 저런 준비는 바뀔 마음만 있다면
진취적 전문기획인력 열명이면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글을 쓴 이유는 이렇게 되기를 가시적으로 바라기보다
현대의 젊은이들 중 한사람으로 불교를 사랑하고 발전되기를 희망한다는 염원을 적은 것입니다.
또 그런 마음들 모아 두서없이 짜짓기한 내용들입니다.
모든 내용과 마음, 회향합니다.
그저 수고 많으신 여러 분들께 죄송하는 마음입니다.
불교유신론(만해), 다석 유영모 어록, 선의 나침반, 실천적 불교사상(법륜), 논어, 순자 등을 근래에 되ㅆㅣㅂ어보고 또 여러 불교 혹은 밖의 청년들과 이야기 나눈 부분들을 참고하여 적었습니다.
댓글목록
보인님의 댓글
보인 작성일
법우님의 뜨거운 열정과 진심어린 고견과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청년불자가 한국불교의 희망입니다.
함께 정진하여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 수처작주와 조고각하의 정신으로 함께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