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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복흠 씨 |
연 씨가 불교와 첫 인연을 맺은 때는 고등학교시절이다. 1970년대 후반 청주 용화사 고등학교 불교학생회에 가입했다. “당시만 해도 청소년들에겐 마땅한 여가거리가 없어 동년배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찰학생회의 인기가 상당했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최근 입적한 조계종 원로의원 혜정스님에게서 혜일(慧日)이란 법명을 받고 본격적으로 불교계 활동에 참여했다. 어언 30년이 넘었다. 한국대학생불자연합회 전국부회장, 대한불교청년회 충북지구 회장 및 전국부회장, 현재 충북문화유산활용회 공동대표까지, 세월과 함께 쌓아온 불교단체 이력에는 포교와 호법(護法)을 향한 그의 열정이 묻어난다.
포교와 호법 향한 30년의 열정
학생들 문화적 정서함양에 앞장
청소년 공간, 사찰이 제공해야
무엇보다 청소년포교의 일익을 담당하는 파라미타 활동에 대한 애착이 크다. 1990년대 말부터 사찰학생회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조계종은 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를 설립해 돌파구를 열었다. 이어서 파라미타 충북지부가 창립됐고 사찰학생회의 지도간사로 일하던 연 씨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사무국장 직책을 맡아 청소년포교에 본격 투신했다.
“충북 파라미타는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배우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템플스테이의 활성화로 학생들에게 불교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사찰행사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불교에 보다 쉽게 접근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청소년 문화재 수호단 운영을 비롯해 문화유산 방문교육, 문화유산 생생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청소년들의 민족문화수호에 대한 관심과 호응을 높이는 일이 그의 주된 임무다. 아울러 제천 덕주사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의료봉사 또한 지역민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충북 파라미타의 자랑이다.
입시스트레스에 지친데다 대부분의 여가를 컴퓨터게임으로 소비하는 청소년들을, 정적인 사찰로 유도하기란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적 문제다. 그는 “사찰에서 교육 불사에 재정적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아 지역에서 직원의 인건비를 마련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토로했다. 예산의 100%를 사무국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 포교의 전문성 확보란 좀처럼 실현되기 어려운 목표다.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도 어깨를 처지게 한다. 파라미타의 존립 이유는 청소년들의 문화적 심성 계발이지만, 일부 학교 관계자들은 단순히 불교단체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자유롭고 활기차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일선 사찰이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오랜 바람이다. <직지심체요절>에 나오는 인도 가야사다 존자의 게송이다. “씨앗도 있고 마음의 땅도 있으니 인연에 의하여 싹은 돋아날 수 있네.” 더 많은 미래세대들의 마음에 불교를 싹 틔우고 싶은 그의 원력이 묻어나는 좌우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