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야심경 ] 육바라밀2 - 지계바라밀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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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9-11-16 13:59 조회6,169회 댓글0건본문
지계바라밀은...
지계(持戒)는 계율을 지키는 수행을 말합니다.
계율을 지킨다는 것은,
곧 말과 뜻과 행동을 절제할 줄 아는 것입니다.
지계는 우리가 부처님 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데
울타리와도 같은 역할을 하기에
‘아름다운 구속’, ‘성스러운 구속’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치 수풀이 우거진 밀림에서
온갖 거친 짐승들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치듯이,
우리가 정진을 해 나아감에 있어서 계는,
주위의 온갖 거친 경계, 온갖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잘 보호해 주는 것입니
다.
오늘날의 세상은
오탁악세(五濁惡歲)의 말법(末法) 시대라는 경전의 말씀처럼,
물질이고, 정신이고 모두가 오염되어 혼탁하기 그지없습니다.
사회는 산업화・도시화로 너무나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인간의 마음 또한 오염되어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시기・질투하며,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탓에
얼마나 많은 죄업을 짓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혼탁한 세계에서
우리를 잘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가 있다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겠
습니까?
그것이 바로 계(戒)인 것입니다.
요즘같이 오염된 시대일수록 지계는
더욱 소중한 바라밀 수행의 덕목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리 험한 밀림이라도 울타리를 잘 쳐 놓으면
거친 짐승이나 온갖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듯,
계를 잘 받아 지니고 실천하는 수행자에게는
온갖 안팎의 경계들 속에서 몸과 마음을 잘 제어할 힘이 생겨납니다.
우리네 어리석고 탁한 중생들에게는
아무리 수행하고자 해도 온갖 경계와 역경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며,
곳곳에 우리의 수행을 방해하는 일들이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그만큼 더 수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계바라밀을 실천하는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몸과 말과 뜻을 잘 다스려 모든 행이 맑고 청빈하기에
그만큼 안팎의 온갖 역경이며 수행에 방해되는 일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계바라밀은 모든 수행자들에게
수행에서의 마장을 제어해주는 밝은 실천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또한 계를 지니는 수행자는
호법선신(護法善神)들이 그를 옹호한다고 합니다.
보통 절에 가면 화엄성중전을 보고 반야심경을 봉독합니다.
그러한 화엄성중들이 바로 호법선신인 것입니다.
그 신중님들은 계를 받아 지니고 정과 혜를 닦는 수행자들을 옹호하며
수행의 길에 생길 수 있는 온갖 장애들을 막아줍니다.
이와 같이 지계바라밀은
모든 수행자들을 오직 정진에 몰두할 수 있도록
온갖 유혹을 제어해 주고 정과 혜를 증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계를 지키지 않고 정(定)에 들거나,
밝은 지혜(慧)가 생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삼학(三學)에서 계(戒)를 먼저 언급한 연후에
정(定)과 혜(慧)를 얻을 수 있다고 한 바도 그러한 연유인 것입니다.
계는 다만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지 규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행동하라’는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실천의 가르침입니
다.
또한 나만 혼자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함께 지킬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하는
이타정신이 깃들어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대승계이다.
소승계는 ‘하지 말라’는 금지규정의 성격이 강하며,
‘스스로 잘 지키라’는 수행자 자신을 위한 수행방법입니다.
그렇기에 계 자체에 철저함을 강조합니다.
같은 오계(五戒)일지라도 소승의 계는
절대 어겨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계행을 강조한 반면,
대승계는 형식과 문자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올바로 실천하도록 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
다.
이를테면, 소승에서는 불망어(不妄語)라고 하면,
절대로 망어나 거짓말 등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만,
대승계는 상황에 따라 선(善)을 위하고 중생(衆生)을 위한다는
이타적인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경우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범개차(持犯開遮)의 정신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지범개차가 아니라 파계(破戒)가 되는 것입니다.
지범개차의 기준은,
바로 일체 중생을 위한 이타적인 동체대비의 마음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바른 수행자는 계를 잘 지킬 줄 알아야 하며,
동시에 잘 파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출가, 재가의 구분 없이 지켜야 할
윤리적이고도 실천적인 계가 있으니, 바로 십선계(十善戒)입니다.
이것은 신, 구, 의로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일체의 악업을 짓지 않도록 하며,
적극적으로 몸과 입과 생각을 청정히
지계(持戒)는 계율을 지키는 수행을 말합니다.
계율을 지킨다는 것은,
곧 말과 뜻과 행동을 절제할 줄 아는 것입니다.
지계는 우리가 부처님 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데
울타리와도 같은 역할을 하기에
‘아름다운 구속’, ‘성스러운 구속’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치 수풀이 우거진 밀림에서
온갖 거친 짐승들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치듯이,
우리가 정진을 해 나아감에 있어서 계는,
주위의 온갖 거친 경계, 온갖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잘 보호해 주는 것입니
다.
오늘날의 세상은
오탁악세(五濁惡歲)의 말법(末法) 시대라는 경전의 말씀처럼,
물질이고, 정신이고 모두가 오염되어 혼탁하기 그지없습니다.
사회는 산업화・도시화로 너무나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인간의 마음 또한 오염되어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시기・질투하며,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탓에
얼마나 많은 죄업을 짓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혼탁한 세계에서
우리를 잘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가 있다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겠
습니까?
그것이 바로 계(戒)인 것입니다.
요즘같이 오염된 시대일수록 지계는
더욱 소중한 바라밀 수행의 덕목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리 험한 밀림이라도 울타리를 잘 쳐 놓으면
거친 짐승이나 온갖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듯,
계를 잘 받아 지니고 실천하는 수행자에게는
온갖 안팎의 경계들 속에서 몸과 마음을 잘 제어할 힘이 생겨납니다.
우리네 어리석고 탁한 중생들에게는
아무리 수행하고자 해도 온갖 경계와 역경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며,
곳곳에 우리의 수행을 방해하는 일들이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그만큼 더 수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계바라밀을 실천하는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몸과 말과 뜻을 잘 다스려 모든 행이 맑고 청빈하기에
그만큼 안팎의 온갖 역경이며 수행에 방해되는 일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계바라밀은 모든 수행자들에게
수행에서의 마장을 제어해주는 밝은 실천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또한 계를 지니는 수행자는
호법선신(護法善神)들이 그를 옹호한다고 합니다.
보통 절에 가면 화엄성중전을 보고 반야심경을 봉독합니다.
그러한 화엄성중들이 바로 호법선신인 것입니다.
그 신중님들은 계를 받아 지니고 정과 혜를 닦는 수행자들을 옹호하며
수행의 길에 생길 수 있는 온갖 장애들을 막아줍니다.
이와 같이 지계바라밀은
모든 수행자들을 오직 정진에 몰두할 수 있도록
온갖 유혹을 제어해 주고 정과 혜를 증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계를 지키지 않고 정(定)에 들거나,
밝은 지혜(慧)가 생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삼학(三學)에서 계(戒)를 먼저 언급한 연후에
정(定)과 혜(慧)를 얻을 수 있다고 한 바도 그러한 연유인 것입니다.
계는 다만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지 규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행동하라’는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실천의 가르침입니
다.
또한 나만 혼자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함께 지킬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하는
이타정신이 깃들어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대승계이다.
소승계는 ‘하지 말라’는 금지규정의 성격이 강하며,
‘스스로 잘 지키라’는 수행자 자신을 위한 수행방법입니다.
그렇기에 계 자체에 철저함을 강조합니다.
같은 오계(五戒)일지라도 소승의 계는
절대 어겨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계행을 강조한 반면,
대승계는 형식과 문자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올바로 실천하도록 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
다.
이를테면, 소승에서는 불망어(不妄語)라고 하면,
절대로 망어나 거짓말 등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만,
대승계는 상황에 따라 선(善)을 위하고 중생(衆生)을 위한다는
이타적인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경우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범개차(持犯開遮)의 정신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지범개차가 아니라 파계(破戒)가 되는 것입니다.
지범개차의 기준은,
바로 일체 중생을 위한 이타적인 동체대비의 마음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바른 수행자는 계를 잘 지킬 줄 알아야 하며,
동시에 잘 파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출가, 재가의 구분 없이 지켜야 할
윤리적이고도 실천적인 계가 있으니, 바로 십선계(十善戒)입니다.
이것은 신, 구, 의로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일체의 악업을 짓지 않도록 하며,
적극적으로 몸과 입과 생각을 청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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