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회 전국만해백일장 만해상 작품(멈춰버린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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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한불청지기 작성일26-02-20 11:57 조회496회 댓글0건본문
제45회 전국만해백일장 만해상 작품(멈춰버린 것은)
고등부 산문
양윤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 육신은 영혼을 가두는 감옥과 같다고.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살아있을 때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죽으면 알게 되리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죽은 지 하루가 지나가는 지금도 사실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죽었고, 육체에서 떨어져나왔으나 이것이 해방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살덩이에서 벗어난 내가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손거가락이나 발가락 같은 신체 말단의 부위부터 나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이대로 마음은 고요하고 차분했다. 내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과, 그 죽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육체를 떠난 직후에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세상 구경을 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에도 가 보고, 호수 위를 걸어보기도 하고. 바글바글 모여있는 사람들의 몸을 통과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특이한 점은, 물체에 닿을 수 없는 나를 센서가 인식한다는 점이었다. 현관문을 지나가면 전등이 켜지고 온도 감지 센서를 지나가면 파란 덩어리가 보였다. 유령은 아주 차가운 모양이었다. 차 안에 있으면 자동차가 달리는 걸 인식하지 못하지만, 가만히 서 있으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차가 나아가는지 알 수 있듯이, 내가 멈추니 바쁘게 돌아가던 세상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 낑겨 출근하는 사람들을 비웃다가도 왠지 박탈감을 느끼고는 했다. 내가 편입될 수 없는 세계란 굉장히 아름다워 보였다.
지금은 엄마의 집에 있는데, 나는 이곳에 찾아오는 걸 계속해서 망설여왔다. 혹시라도 엄마가 내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어떻게 그 모습을 바라보아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집 안은 단정했고 엄마는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이불 밖으로 나온 엄마의 발가락, 식탁 위에 놓인 갈변된 사과, 먼지가 쌓인 앨범 같은 것들이 보였다. 저 앨범 안에는 오래 전 헤어진 아빠의 사진도 있을 터였다. 많은 부분이 흩어진 나는 이제 원에 가깝게 느껴졌다. 거울을 볼 수 있다면 분명 원처럼 둥그러진 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에 방 한구석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터리가 부족합니다.”
확인해보니 그곳에 로봇청소기가 한 대 있었다. 배터리가 부족하면 자동으로 충전단자로 향하는 모델이었는데, 카펫을 빨아들여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 같았다. 기계음에 엄마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그는 코까지 골아가며 깊은 잠에 빠진 채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로봇청소기가 더 크게 위잉 하고 울었다. 나를 쓰레기나 먼지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죽은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 무당도 종교인도 아닌 기계라니, 아이러니 했다. 마음 같아서는 로봇청소기를 충전다잤까지 옮겨주고 싶었느나 내 정신은 물체를 통과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제 청소기를 들어올릴 팔도 남아있지 않았다. 네가 멈추는 것이 먼저일까. 내가 멈추는 것이 먼저일까? 닿지 않는데도 끌려갈 것 같은 느낌에 나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로봇청소기가 다시 고요해졌다. 가끔 카펫을 빨아들이는 것 빼고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육체에 갇여있던 나는 무엇일까. 영혼, 정신, 아니면 그저 사념 덩어리일지도 모르겠다. 붙잡아둘 몸이 없으면 겨우 하루를 버티다 천천히 사그라드는 나. 안에 먼지같은 것들을 수북히 쌓아두는 것을 보아, 이 청소기와 나는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로봇청소기의 빨간 불빛이 느리게 깜박이는 것을 보았다. 겨우 카펫 하나에 걸려 멈춰버린, 어설픈 기계덩어리를 보았다. 그리고 내 안으로 눈을 돌렸다. 죽고 나서, 나는 다른 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했다. 생선을 낚아채는 고양이와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도약하는 새. 자욱한 연기를 뿜으며 담배를 피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지우개로 칠판을 지우고, 피구를 하다 죽었다!라고 외치는 어린아이들 사이에 나는 왜 끼지 못하게 된건지. 멈춰버린 것은 다른 멈춰가는 것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건지. 생각하며 나는 로봇청소기를 향해 내 자신을 숙였다.
딱딱한 플라스틱과 철을 통과하고 내 시야는 로봇청소기 안을 바라보았다. 먼지와 머리카락이 뭉친 덩어리, 손톱만한 사과 껍질. 잘게 찢어진 휴지와 알 수 없는 지저분한 것들이 내 주위를 채웠다. 나는 흩어지며, 그러니까 점점 작아지는 동시에 나 자신을 넓게 퍼뜨리며 청소기가 웅웅대는 것을 느꼈다. 배터리가 부족합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듣고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것이 해방인지. 아니면 또 다른 감옥으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나는 퍼져나가는 조각들을 가만히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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