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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진① 불교와의 인연을 쫓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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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붓다향기 작성일09-12-23 19:24 조회3,917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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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진① 불교와의 인연을 쫓아서

 
 
배영진 / 전 대한불교청년회 중앙회장
 
 
 
필자의 이름은 한 스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에 탁발을 오신 스님이 시주를 받은 다음, 마루에 걸터앉아 그 마루 위에 있는 나를 보고 이름을 지어 준 것이 지금 내 이름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후 성년이 된 청년시절 어느 가을날, 그 스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이름에 얽힌 불연…자연스레 불교에 관심
 
1979년 전국불교 청년대회 계기로 입회
 
 
그 스님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송세이(경북 봉화군 닭실마을 안쪽)’ 인근으로 대부분의 고향이 그러하듯 그곳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논두렁 밭두렁을 따라 걸어야 했고 가을이 무르익은 때라 발목까지 낙엽이 가득 덮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서 ‘송세이’라는 마을에 이르렀더니 그곳은 마을주변에 큰 소나무, 춘양목이라는 적송들이 즐비하게 우거져 있었다. 그 동네에서 절을 찾았으나 세월이 너무 오래 지나서인지 막상 절은 아는 이가 없었고 주민들도 스님이 계시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만 절 같은 곳을 안내 받아 찾았으나 그나마도 비어 있었다. 주민들에 의하면 얼마 전까지 남자 거사가 있었으나 그도 다른 곳으로 가고 지금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 뿐인 전각 안에는 작게 조성된 나한상이 한 분 모셔져 있었을 뿐 스님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 터와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밭으로 되어 있었고, 그 형세로 보아 오래전에는 크지 않은 암자가 법당과 요사채 등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 불교는 민족의 삶을 지탱하게하고 애환을 보듬어 왔다. 어렵게 마련하고 오랫동안 유지해온 암자와 절이 속절없이 비워지고, 또 떠난다면 이 땅 중생들 마음에서 불교가 떠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후 군복무 중, 춘천 쌍용사에서 열리는 일요법회에 다니다가 수계를 했다. 당시 총무원장이셨던 석주스님을 계사로 모시고 ‘청일(淸一)’이라는 법명과 계첩을 받았다. 법명과 함께 계첩을 받아들고, ‘오계를 지키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잠시 하기도 했었다.
 
군복무를 마친 1979년 봄, 어느 날 퇴근길에 들른 것이 조계사와의 첫 인연이었다. 몇 차례 조계사를 찾으면서 둘러보니 화, 토요일은 조계사청년회, 수, 금요일은 서울불교청년회, 목요일은 수선회가 대웅전에서 각각 저녁에 법회를 보고 있었다. 당시는 서울 불교청년회의 법회가 제일 성황리에 진행되는 것으로 보였다.
 
얼마 후 1979년 8월31일 오후부터 저녁때까지 제1차 전국불교 청년대회를 구경삼아 참관하게 됐다. 당시 선진규 선배가 회장으로 대의원 총회를 개최하면서 서울불교청년회를 직할청년회로 결정하는 등의 결정을 하게 됐다.
 
그날 나는 대회에 구경하다가 누군가 다가와서 소속을 묻는 질문에 없다고 하자, 입회원서를 가져와 작성하라고 권했다. 선뜻 입회원서를 작성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서울불교청년회의 입회원서였던 것이다.
 
 
배영진 씨는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청년불교운동 활성화에 앞장섰으며, 민족자주통일불교운동협의회 부의장, 전국불교운동연합 의장으로 활동하며 불교의 사회적 실천 활동에도 힘썼다. 대한불교청년회 제16, 17대 중앙회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청년회 지도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불교신문 2580호/ 12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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