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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3회 전국만해백일장 만해대상 작품 (씨앗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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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한불교청년회 작성일12-03-05 12:12 조회10,17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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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전국만해백일장 만해대상 작품 (대한민국 대통령상)


씨앗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선민혁    /   서강고등학교



소시지의 유통기한은 이틀이나 지나 있었다. 나는 껍질을 벗기고 한 번에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입 안에서 우물거리며 희망슈퍼의 셔터를 내렸다. 셔텨에 밀려온 차디찬 공기가 무릎에 닿았다. 시렸다. 엄마 대신 셔터를 내려 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셔터 하나로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듯한 기분. 엄마도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까. 가로등이 아직 꺼지지 않은, 밤 열시 였다.


셔터가 내려진 가게 안의 밖으로 들어갔다.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 엄마가 방이 딸려 있어서 좋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희망슈퍼는 마을에 하나 뿐인, 생필품들을 파는 가게이기도 했지만 엄마와 내가 사는 집이기도 했다. 오늘도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식품들의 유통기한 날짜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며칠 전에 엄마가 들여온 씨앗 봉투들은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 씨앗이 무슨 필요가 있다고 가게에 진열해 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따금씩 커다란 박스차가 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을 가져가고 제조일이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을 내려놓고 갔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것은 엄두도 내지 않았지만 하루이틀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것들은 우리 모자가 차지하기도 했다. 이거 어차피 가져가 봤자 버리는 건데 드실라믄 드슈, 박스차 운전기사가 맘씨 좋은 얼굴을 하며 먹을 만한 것들을 다시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내일은 일요일이었지만 희망슈퍼는 쉬어선 안되었다. 잘 안되는 가게일수록, 쉬는 날에도 장사를 해야 했다. 그래서 엄마의 병원에 찾아갈 엄두를 쉽게 내지 못했다.


전치 3주라고 했다. 시위를 하다 다친걸 낸들 어쩌냐는 표정으로 입원을 권유하는 의사의 표정이 잠깐 떠올랐다. 언제부턴가 우리 마을 밖 사람들의 모습은 나쁘게 상상되곤 했다. 엄마는 아픈 적도 다친 적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더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해도 아프지 않고, 그렇게 열심히 시위를 해도 다치지 않던 엄마가 입원을 한 정도였으니까.


가게에서 과자 몇 개를 챙겨 비닐봉지에 담았다. 엄마가 가게에서 파는 과자를 먹는 것을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엄마가 좋아할지는 알 수가 없었다. 팔리지 않고 있는 씨앗 봉투들이 눈에 띄었다. 씨앗 봉투 안의 씨앗들은 모두 심으면 꽃을 피우는 것들이었다.


날씨는 맑았지만 햇볕이 뜨거웠다. 나는 한 손에는 과자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햇빛을 가리고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마을 곳곳에 무너지다 만 담벼락들이 보였다. 마을의 빈 집들에게선 모두 비슷한 냄새가 났다.


이곳에 살던 모두는 ‘입주’에 성공했을까. 낙서와 함께 허물어진 담벼락들이 그러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쩔 수는 없었다. 아직도 엄마와 마을 사람들은 이 어쩔 수 없는 곳에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마을의 유통기한은 앞으로 두 달 이었다. 두 달 뒤에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병원에 온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게 문을 열지 않고 병원에 온 내게 면박을 주었다. 당장 가게로 돌아가 가지고 온 과자들을 다시 진열해 놓으라고 했다. 온 김에 이것도 가져가 진열해 놓으라며 씨앗 봉투들을 건네주었다. 엄마의 얼굴은 전 보다 더 수척해져 있었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잠깐 가게 문을 열지 않은 것 가지고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도, 하나도 팔리지 않는 씨앗들을 왜 자꾸 가게에 진열해 두려고 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게로 돌아가라는 엄마의 성화를 이길 수도 없어서, 나는 다시 걸어서 가게로 돌아갔다.



희망슈퍼의 셔터를 올렸다.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셔터가 올라갔다. 바깥세상이 다시 희망슈퍼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가 지날 동안 손님은 네명뿐이었다. 마을에 남은 집들이 별로 없으니, 네명이면 많은 것이었다. 유통기한이 두 달 밖에 남지 않은 마을의 사람들은 오늘을 살기 위해 생필품들을 사갔다. 그 중에는, 씨앗 봉투를 사간 사람도 있었다. 마을에 있는 슈퍼는 우리 가게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생필품이나 다른 물건을 사려면 우리 가게에 오는 수 밖에 없었다.


엄마가 왜 가게 문을 잠깐 열지 않은 것 가지고 그렇게 까지 했는지, 왜 굳이 잘 팔리지도 않는 씨앗 봉투들을 진열해 놓으라고 했는지, 조금은 이해되는 듯 했다. 엄마가 씨앗과 함께 팔려고 했던 것은 희망이 아니었을까.
 

우리 마을의 유통기한은 두 달 밖에 남지 않았지만, 마을사람들이 무너져가는 담벼락 옆에 씨앗을 심으며, 꽃이 핀 풍경을 상상하듯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길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씨앗 봉투의 뒷면에도 유통기한은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씨앗과 함께 심어진 희망에는 유통기한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슈퍼의 셔터를 내렸다. 바깥세상의 모든 것들과 완전하게 단절되는 듯한 느낌이 어김없이 들었지만, 희망슈퍼의 셔터는 내일 아침이면 다시 올라갈 것이다. 꽃이 피게 하는 봄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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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rla님의 댓글

rla 작성일

제목만 보고 상상했던 내용과는 다르네요..
역시 만해백일장은 따뜻한 글들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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