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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심경 ] 실천하는 무상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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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9-11-16 14:09 조회3,7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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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과 무아의 가르침은
단순한 이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가르침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은 무상, 무아를 터득하기 위해서
공동묘지[강가의 화장터]까지 찾아가서
썩어가는 시체를 앞에 놓고 명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인도에서는 강가에 나무를 한 줌 해 두고는 죽은 시체를 태우는데,
대부분 가난해서 나무를 살 수 없어
몸뚱이가 다 타기도 전에 화장의식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타다 남은 시체가 강의 여기저기에
팔 한 짝, 다리 한 짝씩 둥둥 떠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수행자들은 그러한 시체의 모습을 바라보며
무상과 무아의 이치를 관하는 수행을 하는데
이를 백골관법(白骨觀法)이라고 합니다.

백골관법은 아직까지도 소승불교국에서는 실천되고 있다고 합니다.
타일랜드와 말레이시아 등지에는
현대식의 건물과 시청각 교육시설까지 완비한 최첨단 사찰이
울창한 정글 속에 위치해 있다고 합니다.

그 중 한 절의 법당 앞에는 생물시간에나 봄직한 인간의 해골이
인간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 있다고 하는데, 그 옆에 있는 명찰에는,
‘1930년 미스 타일랜드의 실물’이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그 나라에서는 더러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몇 십 년 전, 그 나라의 제일 가던 미인의 모습을 법당 앞에 세워두고,
매일 드나들며 바라보면서 무상과 무아를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정도라면, 그 사찰의 수행자들은
미인들을 보고 집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선방에는 흉측한 미이라가 서 있다고 하는데,
피부와 모발도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사람의 형상으로 두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 방에서 함께 참선하던 스님인데,
몇 해 전에 병으로 죽은 후 그대로 세워 놓았다는 것입니다.
몇 해 전까지 함께 수행하던 도반의 죽은 모습을 보며,
무상과 무아를 터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에 죽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겠습니까?
우리도 이제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올바로 알아
지금 이 순간부터 죽음을 준비하는 생활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수행을 할 때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지금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나중에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돈 좀 벌어 놓고, 자식들 좀 가르쳐 놓고,
나이 좀 들어서 등등 수행하기 좋을 때를 기다리기만 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언제 어느 순간에 임종을 맞이할지 어찌 알겠습니까.

바로 지금, 최선을 다해 지성으로 정진할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정진을 해야,
언제 어느 때 죽음에 이르렀을 때,
이 생에 집착하지 않고 바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무상, 무아의 진리를 올바로 안다면 이 생에 집착할 일이 없으니 말입니
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삶에 대한 엄청난 집착을 가지고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나다’, ‘나는 항상한다’는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의 집착 때문에 죽고 나면 편히 갈 곳으로 가지 못하고,
이 생의 집착심으로 가볍게 이곳을 뜨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에 대해서
너무 슬퍼하거나 집착하지 말라고 합니다.
괴로워 울고, 집착하면 영가가 더욱 편히 갈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
다.

무상과 무아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아는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무상과 무아를 닦아야 합니다.
항상함이 없는 줄 알아 소유와 집착을 끊을 일이며,
고정된 내가 없는 줄 알아 아상을 놓아버릴 일입니다.

수행자는 세상을 대할 때
이렇듯 무상과 무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무상과 무아를 관하며 삶을 살아간다면
온갖 집착과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며,
아상을 녹이고 하심하는 마음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만히 명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무상과 무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말입니다.
무상의 눈, 그리고 무아의 눈...
늘 수행자는 그러한 두 가지 실상의 눈을 가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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