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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심경 ]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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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9-11-16 14:05 조회5,480회 댓글1건

본문

그러면,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아상(我相), 아집(我執)에 대해서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나다’ 라는 상이 없다면 우리는 괴로울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괴로움의 주체는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 괴로움의 주체가 사라진다면
어디에 괴로움이 붙을 자리가 있겠습니까?
내 것이라는 상 때문에, 내 것을 빼앗겼을 때 괴롭고,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하니 괴롭고,
‘내가 옳다’ 라는 상 때문에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나’ 라는 상이 없다면
주위의 어떤 경계에 대해서도 여여(如如)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남이 욕을 하더라도
아상이 깨진 이에게는 한낮 허공중의 흐르는 말이 되고,
또한 반대로, 이런 사람은 내가 어떠한 행위와 말을 하더라도
주위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여
이리 저리로 머리 굴려 거짓된 말을 하고,
거짓된 행동을 하게 되지 않게 마련입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
‘이런 말을 하면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여
자꾸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왜곡되게 말하고,
그런 것이 반복되면 자꾸 구업(口業)만 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의업(意業)과 신업(身業)을 쌓아 가는 생활을 하며,
다시 그 업이 원인이 되어 업보를 받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고 도는 것입니다.

아상을 깨면 모든 것이 깨어지고
밝음이 우리에게 성큼 다가섭니다.
이 도리를 올바로 느낄 때 우리의 삶은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생로병사의 네 가지 괴로움 또한
이러한 아상, 오음성고의 괴로움이 근본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것이고,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상이 없다면, 일체가 ‘나’ 아님이 없기에
일체 대상에 대한 집착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한 대상에 대한 집착심으로의
사랑이나 증오의 감정이 있을 리 없으며,
그렇다면 애별리고나 원증회고가 있을 리 없는 것입니다.

‘나’ 라는 상이 없으니,
즉, 일체가 나 아님이 없으며 대상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으니,
돈, 재물, 명예, 지위, 나아가 깨달음에 대한 집착심을 여의게 되고,
그러기에 구부득고의 괴로움도 있을 리 만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에서 말한 인생팔고는,
덮어놓고 무조건 ‘인생은 괴로움’이라고 결론짓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상이 있는 우리네 중생들에게 있어
인생은 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공부하는 수행자들에게 있어,
일체 분별심과 산란한 마음, 그리고 일체의 경계를,
맑고 밝은 참주인공의 본바탕에 일임하여
맡기고 방하착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인생은 고가 아닙니다.

일체의 경계는 인과 연이 화합하여
잠시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는,
항상하지 않는 경계일 뿐이지만,
우리네 중생들은 그것이 실재하는 줄로 착각을 하므로,
그 경계에 집착하여 경계 따라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며
온갖 망상을 일으키는 것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괴로움은
여러 가지 실체가 없는 원인과 조건들이 모여 일어나는 것,
즉 연기하는 것입니다.
연기하는 것은 괴로움인 것입니다.

그 경계들이 연기로서 본래 공한 것임을 올바로 알아야 하고,
경계가 공하므로 나도 공한 것임을 올바로 알아,
모든 경계를 ‘나온 자리[참주인공]’에 놓고 생활한다면,
우리의 삶은 부처님의 삶에서처럼 향기가 묻어 날 것입니다.

거짓된 나를 붙들고, 거짓된 경계에 얽매여 괴롭게 살 것인가,
본래 공한 나의 본 성품을 올바로 믿고,
그 참주인공에 일체를 놓고,
자연스럽고도 편안하게, 여여하게 살아갈 것인가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괴로움이 ‘성스러운 진리’ 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괴로움을 여실히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이 비실체적인 것임을 알아,
그것을 정면으로 부딪쳐 극복할 수 있기에
괴로움이 ‘성스러운 진리’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괴로움의 철저한 인식,
즉 인생이 괴로움임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고의 철저한 인식이 바로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
‘발심(發心)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에서 살펴본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을 되짚어보면,
‘조견오온개공’을 실천하기 위하여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이는
반드시 ‘도일체고액’할 수 있다는 실천적 가르침인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입의분으로, 서론에 속합니다.
반야심경의 핵심 경구를 말하라고 하면,
의례 이 부분 즉,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을 들 수 있습니다.

일체가 모두 공임을 조견했을 때,
일체의 고통과 액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장에서 설명할 부분은 파사분으로,
일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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