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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심경 ] 반야(般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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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9-11-16 13:56 조회4,361회 댓글0건

본문

Ⅰ. 반야심경의 개관
Ⅱ. 경의 제목

1장. 제경(諸經)의 제목에 대하여
2장. 마하(摩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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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반야(般若)


‘반야(般若)’라는 말은 범어로 ‘프라즈냐(Prajna)’ 라고 하며,
팔리 어로는 ‘판냐(panna)’라고 합니다.
반야는 바로 팔리 어 ‘판냐’의 음역어로서,
마하와 같이 그 발음만 따서 옮긴 또 다른 예입니다.

이 또한 ‘마하’에서와 같이,
반야라는 의미를 중국말로 옮기기에 적당한 단어가 없었으므로,
그 의미가 퇴색됨을 우려해 따로 번역하지 않고
‘반야’라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야’ 또한
우리 범부의 사량(思量)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단어일 것입니다.

반야를 굳이 번역한다면 ‘지혜(智慧)’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지혜가 아니라,
‘최고의 지혜, 즉 깨달음에 이르신 부처님의 밝은 지혜’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부처가 아닌 범부중생으로서
어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단어이겠습니까?

‘지혜’와 비슷한 단어로, ‘지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지혜’와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계산하고, 암기하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극대화된 것이 ‘지식’이라 한다면,
‘지혜’는 이러한 범부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반야의 지혜는 머리를 굴려 생각하고 분별하는 일련의 행위에 대해서
오히려 버리고 비울 것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생각에서 오는 지식은
오히려 우리의 정신세계를 복잡하고 혼란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지식은 업(業)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지식들을
모두 비우고 놓아버려야 합니다.
방하착(放下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의 맑은 불성(佛性),
본래면목 자리에 모두를 되돌려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간의 지식을 부여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식들이 ‘머리 굴리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지혜’라고 하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관조반야(觀照般若)’인데,
이것은 일체의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정견(正見)하는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제법(諸法)의 실상,
즉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고정된 바 없이 비춰 보는 지혜를 말합니다.

2,500년 전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젊은 청년이
오랜 수행 끝에 성취한 깨달음의 지혜가 바로 관조반야인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어떤 신(神)과도 같은 절대적 존재에게서
깨달음을 받은 것이 아니며,
누군가의 도움으로 깨닫게 된 것도 아닙니다.
오직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아
현실 세계의 모습을 여실히 깨달은 것이니
이 지혜를 관조반야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실상반야(實相般若)’입니다.
실상반야는 제법의 실상 그 자체를 말합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세계의 모습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세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는 자가 보이는 현실 세계, 우주와 하나가 되어 버릴 때
이것이 바로 실상반야인 것입니다.

이러한 실상반야를 우리가 올바로 깨달아 바르게 비추어 보게 되면,
이것이 바로 관조반야(觀照般若)인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일체의 모든 존재에 불성이 있고,
법신 부처님이 두루 편만(遍滿)해 계신다고 할 때,
바로 이것은 실상반야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방편반야(方便般若)’입니다.
이것은 문자반야(文字般若)라고도 불리는 것으로서,
이상의 실상반야와 관조반야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일체의 모든 경전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반야는 아니지만,
반야지혜를 이끌어 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방편이 되는 것이므로
반야라고 합니다.

이러한 문자반야, 즉, 경전이 없다면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많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불법을 공부하는 모든 이에게 나침반과 같고,
뗏목과 같은 수단으로 쓰여
깨달음 즉 반야에 이르는 중요한 방편이 되어 주므로
방편반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상 삼종의 반야는
부처님의 지혜인 깨달음의 실상반야에 이르기 위한
세 가지 단계라고도 할 수 있는데,
흔히 우리가 부처님의 지혜라고 일컫는 것은
진리의 당체(當體)인 실상반야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실상반야에 이르기 위해서,
실상반야를 체득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계를 밟아가야 합니다.
무조건 수행만 한다고 해서 반야를 체득하는 것도 아니요,
반대로 부처님 경전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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