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전국만해백일장 만해대상 작품(컵밥) > 만해백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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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전국만해백일장 만해대상 작품(컵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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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한불청지기 작성일19-04-02 13:56 조회5,224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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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밥

 

송세미

동국대학교 1학년

 

 

 

 

 

88, 민지는 컵밥집 남자를 좋아하게 됐다. 그날 민지가 먹은 것은 치츠가 올라간 제육컵밥이었다. 서빙을 보던 남자는 민지에게 음식을 건네며 꾸벅 목례를 했고 그 순간 민지의 눈은 반짝였다. 그렇게 민지의 열세번째 짝사랑이 시작됐다.

컵밥집은 노량진학원가 가장 오른편에 있는 가게다. 민지는 벌써 사년째 노량진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사년간 노량진에서 살며 민지는 매 끼니를 혼자 해결하게 됐다. 그녀는 주로 학원가에 있는 토스트가게나 떡볶이집 혹은 샌드위치 가게를 찾곤했다. 값싸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한마디로 가성비가 좋은 식사였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민지가 그 가게의 남자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자꾸만 반한다는 것이었다. 떡볶이집 아르바이트생은 귀여워서 좋았고 샌드위치집 남자는 키가 커서 좋았다. 그런 식으로 좋아한 아르바이트생들만 벌써 열두명이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마음을 고백하거

나 연락처를 물어본 적은 없었다. 좋아하는 상대가 생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민지는 미소를 지으며 점심을 먹을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덜 지루한 고시생활을 할 수 있었다. 민지의 짝사랑 상대는 빠르면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정도의 간격을 두고 교체되었다, 새로운 상대가 생길때마다 민지는 짜릿한 긴장감을 느꼈는데, 그 정도의 자극도 없었더라면 민지는 그 지루한 고시생활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컵밥집이 새로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민지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안고 가게로 향했고 역시나

사랑에 빠져버렸다.

생각해보니 짝사랑은 민지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여가생활이었다. 고시를 준비하는 다른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 맛집을 찾아가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는데, 민지에게는 맛집에 찾아갈 돈도, 자전거도 없었다. 컵밥집 남자를 좋아하게 된 이후로 민지는 매일 점심을 그곳에서 해결하게 됐다.

생각해보면 컵밥은 정말 좋은 점심이었다. 가격도 웬만해서는 사천원을 넘지 않고 질리지않게 메뉴도 다양했다. 게다가 작은 컵안의 온갖 반찬이 다 들어가있어 몇

번의 숟가락질만으로 간편한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컵밥집에서 합리적인 식사를

하며 좋아하는 남자까지 볼 수 있다니 민지는 요 며칠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도 민지는 컵밥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오늘은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간장조림컵밥을 먹어볼 생각이었다. 카운터에는 평소처럼 그 남자가 서 있었고 민지를 보며 웃었다. 매일마다 보는 얼굴이라 민지를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남자가 입을 연 건 그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혹시 연락처를 좀 알 수 있을까요? 실은

예전부터 관심이 가서 지켜봤었는데.....”

그 순간 민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남자는 민지가 좋아하던 그남자가 맞았다. 그러나 민지는 그에게 연락처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니까 민지는 짝사랑이라는 여가생활이 좋았던거였지 그 남자 자체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짝사랑을 하는 데에는 시간도 돈도 필요하지 않지만 데이트를 하려면 많은 시간을 써야하고 또 데이트비용을 써야한다. 그렇게되면 그 일은 더 이상 간편한 여가생활이 아니게 된다. 민지는 당황한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다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저는 그냥, 컵밥만 먹으러 온건데......”

그날 밤 민지는 공부를 다 끝내고 침대에 누우며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컵밥집 남자와 애인사이가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데이트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민지

는 앞으로 점심을 먹으러 어디를 다녀야하나 고민하게 됐다. 남자와의 사이가 어색해

져버린 터라 더 이상 컵밥집에는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컵밥만큼 싸고 간편한 메뉴도 잘 없었다. 토스트는 값싸긴 했지만 밥이 아니라 든든하지 않았고 샌드위치는 점점 더 비싸지고 있었다. 문득 민지는 자신이 모든 것을 싸고 간편하게 해결하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밥을 해결하는 것도 여가생활도 그리고 사랑하는 방식도, 컵밥메뉴를 바꿔가며 짝사랑을 하긴 했지만 그들 모두 똑같은 간편한 사랑으로 끝나버렸다. 가성비 좋은 사랑, 가성비 좋은 점심, 어쩌면 민지는 자신의 삶이 컵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다. 매일 다른 하루도 눈뜨긴 해도 그건 사실 같은 컵 안에 있어 별다른 차이가 없는 메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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